새벽종 차량 소음에 잠을 깼다. 새벽 4시 반.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었다. 더위를 식히려고 열어둔 거실 창으로 넘어온 소음은 청소차 소리였다.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차량에 장착된 기기작동 소리만으로도 청소차임을 직감했다. 나를 깨운 청소차가 일을 마치고 떠나자마자, 새소리가 시끄럽게 그 뒤를 이었다. 리듬과 음정이 제각각인 소리들이 뒤섞였다. 설사 같은 리듬, 같은 음색이라고 하더라도 내 귓속으로 파고든 메시지들은 저마다 달리 들렸다. 배고픔에 징징대는 아기 새소리,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려는 어미 새, 게으른 하품을 하
서늘한 새벽공기 어둠이 자작한 새벽. 열대야의 후덥지근함은 사리지고, 거실에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무심결에 켜버린 선풍기 바람에 온몸의 모공이 깜짝 놀랐고, 희끗해진 털들을 잔뜩 곧추세워 공격 자세를 취한다.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면서 놀란 털들을 가까스로 달랜다. 선풍기를 끄고 소파에 누운 채 얇은 이불을 끌어당긴다. 열린 창으로 시커먼 어둠을 밀치고 서늘한 기운이 거실로 쏟아져 들어온다. 정서적·습관적으로 내 주위를 맴돌던 열대야의 후덥지근함이 이내 뽀송뽀송해진다. 장마에 배가 축 처진 벽지, 화장실의 습한 배수구에 슬어 있는 시
다시 고개 드는 코로나 공포 사무실로 들어서는 후배는 무척 수척해보였다. 한 달 만에 몸무게가 8㎏이나 빠졌다는 그의 말은 선뜻 와 닿지 않았지만. 실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듯 했으니까. 그는 한 달 전 코로나에 걸렸단다. 별다른 증상이 없어 재택치료를 받고 격리 해제됐으나 좀체 제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겹단다. 도무지 심한 속 쓰림 탓에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고, 이는 체중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다. 큰 병이 의심스러워서 대학병원에 쫓아가 내시경이나 각종 영상검사를 해봤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고.
보리밥 소동 모처럼 일가족 넷이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모처럼’ 이래서 칼질(?)을 한다든지, 고급 일식당은 아니었다. 칼국수나 보리밥으로 제법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평일 근처 관가 손님들이 주로 이용하는 집이라, 주말엔 한산했다. 식단은 칼국수로 통일했고, 놓치기 아쉬웠던 보리밥과 만두는 ‘테이크아웃’ 했다. 테이크아웃 해온 보리밥으로 저녁끼니를 해결하려다 깜짝 놀랐다. 단팥빵의 팥 앙금 같았던, 보리밥에서의 열무김치가 보이지 않았다. 요즘 뉴스마다 하도 물가타령을 해서, 행여 미리 보리밥 위에 열무김치를 끼얹어놓았을까 해서
‘양날의 검’ 스테로이드 여름철 불청객인 습진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이 숙면을 통째 앗아간다. 지난밤에도 한밤중에 눈을 떠야 했다. 피부끼리 접촉할 수밖에 없는 습한 부위에만 골라서 생기는 습진의 습벽 탓인가. 열대야로 축축해진 병소는 이내 균들을 들쑤시게 하고, 내 습진의 기세를 등등하게 한다. 냉기를 머금고 있는 대리석 거실바닥에 드러누워 뜨거운 가려움증을 떨쳐내다 보면 금방 동이 튼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는 연고를 바르는 일이다. 효과는 금방 나타난다. 그 바람에 매일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의 지원 호소 “2월 24일 새벽 4시쯤. 갑자기 지붕 위로 헬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러시아의 느닷없는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파괴되고 있다. 돈바스주에 마리우폴이라는 도시다 있다. 전쟁 전에는 인구가 50만여 명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최대 철강회사도 2개, 석유화학회사들이 들어서 있는 항만물류 중심도시였다. 전쟁이 발생한지 4개월 남짓 만에 인구는 불과 5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전쟁 중 사망자만도 4만∼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도시 내 1만 5천여 개의 건물들 가운데 90%가
어느 날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아들이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았는데, 좌측 부신(신장의 상부에 붙어있는 내분비기관)에 혹이 있고, 3개월 후에 다시 CT 검사를 하자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위장관외과를 전공해서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혹 자체가 애매해 3개월 뒤 커지는지 또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고, 또 검사 후 치료 방침을 정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 같다는 애매한 답을 해주었다. 전화를 끊으면서 ‘왜 진료받을 때 주치의에게 자세히 질문해보지 않고, 내게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 사이라 내색하
바다로 간다 시인_정정옥실속도 없이 객쩍은 날바다로 간다울퉁불퉁한 바위 모퉁이에반가부좌를 하고 앉아서먼 수평선을 바라본다갈매기 한 마리철썩철썩 파도를 탄다조약돌에 아롱지는 수많은 은방울무지개 만든다고뇌의 망상 속 그물을 뚫고휘어진 낚싯대 물고은비늘 갈치 한 마리몸부린친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공기관과 기업은 물론 개개인의 정보보호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해킹이나 서비스 방해 등 대규모 사이버 공격 같은 인터넷 침해 사고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9년 7월, 해커에 의해 감염된 좀비 PC 11만 대가 정부기관을 비롯해 22개의 사이트를 공격해 전산망을 마비시킨 '7ㆍ7 DDoS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이때를 기억하며 경각심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2012년부터 정부는 매년 7월을 '정보보호의 달'로, 그리고 매년 7월 둘째 수요일은 '정보보호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1950년 일어난 6ㆍ25전쟁은 휴전 이후에도 온 국토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그 기능을 수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53년 1월 국제시장 대화재를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에 일어난 영주동 부산역전 대화재는 조금씩이나마 재건을 이루며 일상을 회복하던 부산 시민들의 희망을 삼켜버렸다.모두가 좌절에 빠져있을 때, 미군 창고를 열어 3만 명의 이재민에게 잠을 잘 수 있는 텐트, 의류, 침구류, 식량 등 군수물자를 긴급하게 지원한 이가 있다. 바로 유엔군 부산군수기지사령관으로 복무하던 '리차드 위트컴' 이
조선후기 네덜란드인 하멜이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상을 기록한 표류기.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 '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관한 서양인의 최초의 저술로서 당시 유럽인의 이목을 끌었다.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르베르(Sperwer; 영어 Sparrow Hawk)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의 대정현(大靜縣) 차귀진(遮歸鎭) 아래 대야수(大也水)연변에 상륙했다.그들은 체포되어 13년 28일 동안 억류되었다가 8명이 탈출해 귀국했는데, 귀국선의 서기인 하멜이 한국에서
갈 데 없는 발열 응급환자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4시 반. 한 시간 전의 부재중 전화 흔적이 남아 있다. 지인의 얼굴과 함께 응급상황이 겹쳐졌다. 급히 전화를 걸었다. “○교수, 전화했네요. 누가 아픈가 봐요?” 지인은 지금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병원 응급실에 와 있다고 했다. 모시고 사는 팔순 어머니가 새벽에 고열과 오한으로 고통스러워해 정신없이 119를 호출했단다. 응급차량에 어머니를 모시고 집과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동승한 119구급대원이 전화를 걸어 ‘발열과 오한환자’를 모시고
빨래 건조기 샤워를 끝내고 서랍에서 수건 한 장을 꺼냈다. 흘러내리는 물기를 훔치는데 이내 수건이 눅진해진다. 잘 말라서, 뽀송뽀송한 촉감을 기대했지만 실망스럽다. 서랍장에 차곡차곡 개어놓은 수건을 만지는 촉감이 죄다 찜찜한 뒤끝을 남긴다. 장마철 탓으로만 몰아붙이기에도 멋쩍다. 햇볕을 쐬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을까. 얼마 전 집안에 빨래건조기를 들였다. 세탁한 빨래들을 햇볕 잘 드는 거실 창가의 빨래걸이에 며칠 동안 주렁주렁 매달아둬야 하는 성가심이 줄어들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오가면서 하루 만에 빨래를 끝낼 수 있어 편리했지만,
맹그로브 나무나 맹그로브 숲을 말하며, 숲을 이루면 붉은 뿌리가 돋보여 홍수림(紅樹林)이나 해표림(海漂林)이라고도 불린다. 열대 및 아열대의 큰 강변, 하구, 바닷가 진흙 바닥에서 자생한다. 마다가스카르를 포함한 아프리카 해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에서 자라며, 미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의 섬들에서도 발견 된다.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오키나와 야에야마 제도에 있는 이리오모테섬과 이시가키섬에 서식해서 일본인들에게 나름대로 알려졌다.화석으로서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중생대 백악기 말이라고 한다. 처음 발견되는 지역은 아시아
옛날에 한 스님이 무더운 여름날 동냥으로 얻은 쌀을 자루에 짊어지고 가다 큰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게 되었는데, 때 마침 농부 한 사람이 소로 논을 갈다가 그 나무 그늘에 다가와 함께 쉬게 되어습니다. "곧 모를 내야 할 텐데 비가 안 와서 큰일이네요. 날이 이렇게 가물어서야, 원." 농부가 날씨 걱정을 하자 스님은 입고 있던 장삼을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해지기 전에 비가 내릴 겁니다.” 그러나 농부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에이, 스님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아, 이렇게 쨍쨍한 날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에 실려 궤도에 올라간 성능검증위성에서 두번째로 분리된 한국과학기술원 (KAIST) 큐브 위성(초소형 위성)이 3일 양방향 교신에 성공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KAIST에 따르면 KAIST 지상국과 큐브위성 '랑데브(RANDEV) 간 실시한 양방향 교신은 3일 오후 4시 10분께 성공했다. 오전 2시와 오후 2시 40분 KAIST 지상국은 전력공급 채널의 상태 변경, 시스템 모드를 대기 모드에서 안테나 전개 모드로 변경할 것을 위성에 명령 오후 4시 10분 위성은 정상적으로 임무 수행
인생이란 알고 보면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은 타인이나 세상이 아니라 내 자신이더군요.1953년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내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라는 멋진 명언을 남겼지요.내가 내 자신을 이기면 세상도 이길 수 있지만 내가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면 세상과의 싸움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을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고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좌절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이 최고의 자산인 동시에 때로는 최
장마철 곰팡이 아침에 주방의 국 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뿌옇게 변해 있었다. 상했나? 코끝을 냄비 쪽으로 살짝 갖다 댔더니 악취가 풍겨 나온다. 전날 저녁 국을 끓여놓는 걸 깜빡해서 생긴 사고(?)다. 한 사람 몫으로 추정되는 미역국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쏟아버렸다. 아깝지만.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바닥의 물기를 훔치는데, 바닥과 가까운 벽면에 검은 얼룩이 눈에 띄었다. 샤워기로 물총세례를 퍼부었으나, 얼룩은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문질렀더니, 곰팡이다. 늘 축축한 환경 속에 폭염까지 급습했으니, 곰팡이 서식처로는 샤워
역지사지(易地思之) 우크라이나의 종전을 고대하던 세계인들은 또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러시아가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대도시 쇼핑몰을 포격했기 때문이다. 민간인 수십 명이 죽고, 수백여 명이 다쳤다는 소식이다. 현장의 비참한 상황들이 속보로 전해질 때마다 아비규환이 떠오른다. 국내의 우크라이나 지원 카톡방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포성처럼 들려온다. 마냥 걱정만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로할 수 없다며 의약품이나 생필품 지원에 더 노력하자고 서로를 북돋운다. 몇몇은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해서 우크라이나에 난방기구나 방한용품들을 모아서 보
부처꽃 요즘 퇴근길 지하철 장전역 아래 갈맷길에서 꽃밭을 만난다. 100여m 남짓 길섶에 길게 도열해서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을 응원하는 듯하다. 때로는 그들의 모습에서 북녘 어느 광장의 환호성들이 어른거리기도 해서 피식 웃고 만다. 부처꽃이다. 다년생 풀로서, 우리나라 어디에든 흔하다. 산이나 들녘 습지에서 잘 자란대서 그랬을까. 구청에서 온천천 개울가를 따라서 길섶에 부처꽃 화단을 조성했다. 지난해 이맘 때 처음 꽃밭과 마주하자마자 반가웠다. 보랏빛 감도는 녀석들을 나는 단박에 라벤더 꽃으로 맞이했고, 몇 년 전 겨울 홋카이도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