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덫금지 범어사 계곡 곳곳에 나붙은 현수막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길 고양이를 잡으려고 덫을 설치하거나 쥐약을 놓는 행위는 동물 학대 행위이고, 이는 곧 범죄라는 경고문을 담고 있었다. 위반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대서, 마치 고양이에게 할퀴기라도 한 듯 안내문이 따끔하게 다가왔다. 고양이는 특별히 농작물이나 가축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동물인데, 누가 덫이나 독약까지 동원해서 잡으려는 걸까. 외려 쥐를 잡아먹으니 인간에게 유익한 동물 아니던가. 수십 년 전 시골 고향에서는 정기적으로
20대 대통령선거전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본격 시작됐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곳에 선거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이른 아침 지하철 역사 앞에서 각 후보 홍보피켓을 든 선거운동원들이 저마다 한 표를 호소하면서 방긋 출근인사를 건넨다. 거리 곳곳이 시끌벅적하다. 유세차량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읍소들은 차라리 소음에 가깝다. 인터넷포털사이트 뉴스도 코로나보다 선거보도들로 넘쳐난다. 선거 전략은 역시 네거티브라더니, 제 자랑보다 남 탓을 더 내세운다. 저 후보는 절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고 핏대 올리며 숨겨져 있던 갖은 흉들을 폭
부산의 마지막 기회(?) 주말 아침 출근길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하다 멈칫했다. 게이트에서 방송되는 안내말이 귓속에 박혔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를 응원합니다!” 깜빡 잊고 있었다. 어느새 8년 앞으로 다가온, 부산의 마지막 기회다. 부산은 이미 대한민국 제2도시로서 위상을 잃은 지 오래다. 경제규모는 비교조차 쪽팔릴 만큼 수도권 도시들에 비해 초라하다. 인구감소도 예사롭지 않다. 당장 부산 인구는 향후 20년 안에 현재 인구의 10%이상 줄어들 것이란다. 한때 ‘400만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인구가 300만선이 무너질 위
불이야!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에다 한파가 덮치자 텔레비전방송에서는 부쩍 화재 시 행동요령을 강조한다. 산불과 집안 화재 등 유형별로 대처요령을 일러준다. 어떤 유형의 화재든 일단 불이 난 것을 처음 본 사람에게 주문하는 건 똑같다. 불이야!, 하고 소리쳐 주변사람들에게 알리라는 거다. 방송을 보는 순간 꺼져 있던 옛 추억에 불을 지폈다. 어렸을 적 해마다 겨울 고향동네에선 불이 났다. 거의 대부분 화재원인은 실화(失火)였다. 아이들의 불장난이나, 어른들이 병해충 방지를 하려고 논두렁을 태우다가 산불로 이어졌다. 나도 몇 번 작은(?
마기꾼 “이마와 눈썹이 정말 잘 생겼다!” 새로 입사한 젊은 친구의 마스크 밖으로 드러난 인물이 준수하게 다가와서 건넨 인사말에 그의 반응이 생경했다. “친구들이 ‘마기꾼’이라고 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 잘 생긴 줄 알았으나, 막상 벗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 젊은이들의 신조어 인듯했다. ‘마기꾼’은 ‘마스크를 쓴 사기꾼’의 줄임말이란다. 코로나 팬데믹 탓으로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됐다. 숨쉬기가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익명성이 보장되고 뜻밖에도 ‘마기꾼’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망외의 소득도
엄마꽃 출근 직전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구성진 노랫가락에 목이 뜨거워진다. 그립기도, 애처롭기도 한 목소리에 내 시선이 얼어붙는다. ‘고향’ 과수원에서 농사일을 거들던 젊은 트로트가수가 한 엄마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제목이 딱 어울렸다. ‘엄마꽃’.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네 / 우리 엄마 젊었을 적에 / 눈물이 나요 눈물이 나요 / 나 땜에 변한 것 같아 // 그래도 온 세상 제일 예쁘다 / 엄마 엄마 우리 엄마꽃’. 엄마꽃은 어떤 모습일까. 며칠 전 병실에 들렀다가 틀니를 빼서 합죽해진 엄마 모습에서 분꽃을 떠올렸다.
갈색머리 퇴근길 지하철 객차 안에서 조심스레 거울에 얼굴을 비췄다. 아침회의 때 직장동료가 한 말이 떠올라 설마?, 하는 마음을 확인하려고. “머리색이 달라졌네요. 흰머리가 아닌데요.” 머리 샴푸만으로 흰머리를 갈색 염색머리로 바꿔준대서 딱 1주일 사용했다. 매일 아침저녁 긴장된 마음으로 샴푸머리를 살폈지만 작은 변화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되레 점점 듬성해지는 머리숱에 마음이 착잡해지기만 했다. 그마저 블랙샴푸 사용 1주일 만에 ‘해당제품이 신체부작용으로 판매 금지된다’는 당국의 발표를 듣고 곧바로 샤워장에서 치워버렸다. 그러고 열
섭씨 4도 차이 아침 공기가 차갑다. 얼굴이 몹시 시리다. 마스크 틈새를 삐져나온 따뜻한 입김이 안경유리를 뿌옇게 흐린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밖과 안쪽 온도차에 따라서 안경알의 뿌연 농도가 달라진다. 짧은 바짓단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체온을 확 떨어뜨린다. 으스스한 느낌이 온몸을 움츠려들게 한다. 콧물이 찔끔, 한다. 옷깃을 잔뜩 세워 바깥 한기가 내 몸에 걸어오는 희롱을 살포기 눈치 보면서 조심스레 뿌리친다. 전날까지만 해도 아침 공기가 제법 훈훈했다. 여며진 옷깃을 풀어헤치고 몸을 대기에 내맡겼으니까. 봄기운이 물씬했다. 시
그들의 집 어둠이 자작해지면 개울 여기저기서 다들 부산스럽다. 물속 물고기도, 물위 오리 떼도. 집으로 재촉하는 온천천 갈맷길 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비둘기 떼도 구구거리면서 둥지로 날아간다.문득 그들의 거처가 궁금해진다. 물고기들은 바위 틈 보금자리나 잔잔한 깊고 넓은 물속에서 비박이라도 할게다. 옛날 시골서 친구들과 함께 횃불 들고 개울에 가면 물고기들이 넓은 개울 물속에서 졸고 있었다. 오리 떼는 개울 한가운데 모래톱이나 갈대 덤불속에서 깊은 잠에 빠졌을 거다. 추위를 피하려고 잔뜩 날갯죽지 속에 몸을 움츠린 채 모래톱 위
어머니의 수구초심 요즘 어머니가 입맛을 잃었다. 한두 숟갈 떠다말고 이내 상을 물린다. 식사량이 부족하다 보니 헤모글로빈수치가 떨어져서 이따금 피 주사를 맞곤 한다. 주말에 소고기 죽을 사들고 병동에 들렀더니 한두 숟갈 먹고는 입을 앙다물고 만다. 어르고, 큰 소리 치면서 한 술이라도 더 드시게 해보려했지만 어머니는 완강히 거부했다. 5년째 병상 생활이 지긋지긋할 만도 하지 싶어 기분전환을 위해 고향 ‘노루밭’을 불러냈다. 어머니가 입원할 즈음 한 지상파방송에서 우리 고향과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를 방영했다. 고향 구석구석을 소개하고,
봄볕 아래 길 고양이들 봄볕이 따사롭게 쏟아지는 범어사 계곡. 길냥이 두 마리가 해바라기를 즐긴다. 두 눈동자를 지그시 감고서 온몸에 봄볕을 샤워기 물처럼 뒤집어쓴다. 따뜻하게 내리는 햇볕이 길냥이를 노곤하게 만든다. 입을 잔뜩 벌려서는 한껏 하품으로 노곤한 무료함을 털어낸다. 그지없이 평화롭다. 야생은 거칠어도, 그 안의 본성은 평화로운 건가. 둘은 남매일까, 형제일까, 자매일까. 덩치로 봐서 한 배에서 태어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서로 하품하던 둘의 눈이 마주치면서 한동안 졸고 있던 장난기가 발동하는가 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달라진 국수 맛 저녁끼니를 때우려고 단골 국숫집에 들렀다. 즐겨 다니던 국수가게는 설 연휴 마지막 날까지 쉰다며 문을 열지 않았다. 국수 마니아들로 식당은 꽤 붐볐다. ‘최애’ 단골집은 아니었지만 그 집 역시 남해산 멸치로 우려낸 진한 육수가 일품이었다. 주인장은 한 술 더 떠서 ‘깊이 우려낸 멸치곰국을 남기지 말고 먹으라’라는 홍보 안내문으로 손님들을 윽박(?)질렀다. 채 쓴 단무지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부추나물 고명을 풋고추와 잘 섞었다. 젓가락으로 휘젓는 사이 벌써 입안에 침이 흥건히 고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국수 대
코로나 확진자 100만 명 돌파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20년 1월 하순 첫 발병이후 거의 2년만이다. 나름 선방했다는 자평도 해보지만 최근 확산 세를 따져보면 그럴 계제가 아니다. 확진자가 첫 50만 명에 이르기까지 22개월 걸렸지만, 최근 단 두 달 사이에 50만 명이나 추가돼 100만 명을 넘어선 거다. 전파력 갑인 오미크론 변이종이 우세종으로 부상하면서다. 최근 급증세는 한동안 방심하던 코로나 방역에 더욱 신경 쓰이게 한다. 가까운 가족 중에 코로나에 확진됐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려
루틴에의 집착 아침에 고혈압 약을 꺼내다가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곧바로 머릿속에서는 일말의 불안감이 스멀거렸다. 재수 없는 날인가? 서둘러 콩알보다 더 작은 약을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금방 눈에 띄지 않았다. 끝내 무릎을 꿇고서 불안감을 가득 담은 두 눈으로 식탁 아래를 샅샅이 살폈다. 찾지 못한다면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생기려나…. 조급해하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식탁 다리 틈에 끼어 있는 약을 찾아서 먹었다. 그냥 손끝에서 흘려 내렸을 뿐인데도 나는 루틴에서 벗어난 그 장면에다 커다란 조짐과 불안한 예후까지 부여하고 전전긍긍하는
하얀 눈 세상을 기다리며 눈은 언제나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우리 곁으로 몰래 다가왔다. 새벽에 참았던 오줌보가 터질세라 방문을 나서는 순간, 밤새 확 바뀌어버린 세상에 깜짝 놀랐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한동안 ‘작은 해결거리’조차 잊은 채 흰 세상에 빠졌다가 다시 용솟음치는 요의를 참다못해 그냥 눈 내린 마당 한가운데 서서 바지춤을 내렸다. 흰 세상은 노랗게 녹아 흘러내려 갔다. 낄낄대는 악동의 짓궂음을 나무랄 새도 없이 하얀 김만 모락모락 피운 채 마치 생을 마감한 사자의 영전처럼. 이어지려던 잠을 커다란
임인년 새 식구 아파트 거실에 새 식구 셋을 새로 들였다. 로즈마리, 땅채송화, 청산호. 칭얼대지 않아 손길 덜 가는 다육이와 향이 건강한 허브를 입양했다. 설날 하루 전 집근처 법기수원지를 찾았다가 새 식구들을 만났다. 앙증맞은 땅채송화는 정작 거친 환경 속에서 자라왔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암석 모양의 조형물에 붙인 듯 심어놓은 땅채송화는 우리나라 남쪽 바닷가 바위 틈새에서나 볼 수 있단다. 오뉴월에 피는 노란꽃이 그리도 앙증맞다고 자랑했다. 거친 환경을 헤치고서 앙증맞은 꽃을 피운대서 생긴 꽃말이 ‘씩씩함’이다. 기세
코로나 신속항원검사 코로나19 변이종인 오미크론(SARS-CoV-2 Omicron)의 기세가 무섭다.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었다는 방송뉴스 보도가 채 귓전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2만 명을 돌파했다. 아직 정점을 찍지 않았대서 더 두렵다. 조만간 하루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을 거라는 예고뉴스까지 쏟아지고 있어 봄날을 기다리는 이들의 들썩이던 엉덩이를 되레 무겁게 한다. 확진자들이 무더기로 나오다보니 감염여부를 확인하려고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병의원마다 줄을 잇고 있다. 질병청으로부터 코로나 검사기관으로 지정받은 온종합병원
온천천 갈맷길 사람들 매일 퇴근길 온천천 갈맷길 걷기도 어느새 10년 훌쩍 넘었다. 늘 같은 시간대, 저녁 7시부터 한 시간 남짓, 온천천 동래∼금정구간을 걷는다. 낯익은 얼굴들도 생겼다. 내 또래로 보이는 남녀 둘은 늘 달린다. 그 나이에 무리일 듯한데, 경쾌한 발걸음에서 건강이 듬뿍 묻어난다. 마치 복싱선수가 링 위에서 어퍼컷 펀치를 휘두르는 자세로 두 팔을 위로 쭉쭉 뻗어가면서 걷는 중년여성도 자주 만난다. 그 자세로 미뤄봐 복부 비만관리에 꽤 애쓰는 눈치다. 겉으로 봐서는 군살이 없는데도 한결같은 자세로 열심히 걷는다. 다들
친구 온천천 갈맷길 지하철 부산대역 부근에서 누가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머리 듬성하고 이마 주름살로 미뤄봐 내 또래로 보였다. “저, 임종수씨 아닙니까,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나 ×××이다!” 그의 이름 세 글자를 듣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1978년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같은 전공계열로 대학 1학년을 한 반에서 보냈다. 재수 끝에 입학한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아서 더 노련해 보였고, 입담이 무척 좋았다. 무슨 주제든 대화에 끼어들어 좌중을 홀렸고, 즐겁게 했다. 특히 그는 야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