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이 되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다. 남편이 그렇게 타계 했고, 내가 그렇게 남겨졌다. 100 일 전의 일이다. 팔십대인 우리 부부의 나이로 보아서는 남편이나 아내인 나에게, 그리고 어느 노년들에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두드러지게 삶의 의욕과 대비가 달랐다. 남편은 모기에 물려도 병원을 찾는 사람이다.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 몸을 움직여 보고 혹시 불편한 곳은 없나 점검을 한다.남편은 몸을 신생아처럼 관리한다. 그의 좌우명 중 첫째는 병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음
만물은 '있어라'하는 신의 명령에 의해 창조됐습니다. 이것은 코란의 말입니다. 코란은 '실로 그 분께서 무엇에 뜻을 두시고 '있어라'하면 그대로 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또 '나는 숨겨진 보물이었으나 알려지기를 원했다.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만물이 창조된 세계에는 만물이 '어느 방향에 있든, 거기에는 알라의 얼굴이 있다'고도 했습니다.코란의 창조설은 성경에서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말한 것과 유사합니다.코란의 명령이나 성경의 말씀이 있기 전에
望八(팔십을 바라보게)되니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 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
중국의 한문 원서를 번역할 때 종종 오역을 하는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문에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는 문장을 띄어쓰기를 잘못하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가 되듯한문을 번역할 때 띄어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도 오랜 옛날부터 줄곧 한문만 쓰다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시자 처음에는 중국한문의 표기방식을 그대로 차용하여 띄어쓰기가 없었다.“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맞지 않으니...” 로 시작되는 훈민정음 서문부터 띄어쓰기도 없고 쉼표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 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시)남해 금산은 돌산입니다. 돌산은 내가 가본적이 있는 금강산을 빼닮았습니다. 작은 금강산입니다. 산의 보리암은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 서해의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부르는 기도를 하면 큰영험이 있다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서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선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것이 내 이야기이고 우리 집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번 곱씹어 보았다. 결혼해서 얼마 동안은 그래도 내가 결정하는 게 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거의 없고 아내가 다 결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몇 년에 걸친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아내한테 밀리고 나니까 탈환할 길이 없었다. 이제는 반격을 시도할만한 힘이나 무기도 없으니 다시 찾아오는 일은 아예 포기해 버렸다.이렇게 되기까지는 험난한 투쟁의 과정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투쟁은 아주 작은 일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버스나 전철을 같이 탔
대한민국 헌법이 1948년 7월 17일에 제정, 공포된 것을 축하하고 이를 수호하며 준법정신을 높일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로 매년 7월17일에 해당한다. 제헌절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헌법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1949년에 국경일로 정해졌다.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17일이어서, 과거 역사와의 연속성을 염두에 두고 1948년 7월 17일에 제헌헌법을 공포했다고 한다.제헌절의 법률적 근거는 1949년에 제정된 '국경일에관한법률' (법률53호) 이다. 이 법률에 의해 제헌절과
서예가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 선생은 2001년 1월 9일에 타계했습니다.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살다가 진주에서 돌아가신 토박이 진주사람이고 진주의 선비입니다. 92세의 나이에 돌아 가셨습니다. 은초는 진주성의 촉석루 편액 와 북장대 편액 그리고 를 비롯해 해인사 과 구광루(九光樓) 주련 등 진주 주변의 사찰과 누각 그리고 가정에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서체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물 흐르듯 막힘이 없고 청아하면서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 중복, 말복을 가리킴. 하지로 부터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 후 첫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 하며 이를 삼복(三伏) 혹은 삼경일(三庚日) 이라 한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들기 때문에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이처럼 20일 만에 삼복이 들면 매복(每伏)이라고 한다.하지만 말복은 입추 뒤에 오기 때문에 만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면 달을 건너 들었다 하여 월복(越伏)이라 한다. 삼복은 음력의 개념이 아닌 양력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
한국인은 원래 선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白衣民族) 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그리스의 ^시라쿠사 거리에는 명물 동상이 하나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이 명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답니다.그러나 처음엔 동상의 모습에 웃지만, 동상 아래 새겨진 글을 읽어 보고는 모두들 감동을 받고 깊이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관람객들이 처음 이 동상을 보고 웃는 이유는 벌거벗은 채로 모양은 사람인데, 그 동상의 앞머리는 머리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완전한 대머리이며, 양 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한 손에는 저울을 쥐고 있으며,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
음력 6월15일로 복중(伏中)에 들어있으며 유둣날이라 불리는 세시풍속. 이날은 일가친지들이 맑은 시내나 산간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뒤, 가지고 간 음식을 먹으면서 서늘하게 하루를 지낸다. 이것을 유두잔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에 질병을 물리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이 풍속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고려 희종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의 '김거사집'에 동도(東都: 경주)의 풍속에 6월 15일 동류수(東流水)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어버리고, 술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회 맛있게 먹는 법 무더운 여름철엔 역시 ‘냉(冷)’ 음식이 제격이다. 냉면, 냉국수, 초계국수, 콩국수, 밀면. 누군가는 옛 선비들 흉내라도 내듯 ‘여름철엔 역시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며 뜨거운 국물을 찾는 이들도 있지만, 식사하면서 땀까지 뻘뻘 흘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내가 이따금 찾는 여름별식에서 물회가 빠질 수 없다. 생선회를 그냥 먹는 것조차 물컹거리는 식감 탓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런 생선회를 물에 말아서 먹어야 하는 일은 어지간한 비위가 아니면 도전하기 쉽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식사
고물가에 대한 단상 최근 고물가를 취재하고 있던 후배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봉사단체 그린닥터스의 무료급식봉사를 하는 것과 관련해서 물었다. 부식비용이 크게 늘지 않았느냐는 거다. 사실 나도 궁금했다. 병원 직원식당에서 하루 두 끼를 해결하고 있어 음식 값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따금 외부 식사미팅 자리에서 벽에 붙어 있는 메뉴 표를 보고 짐작할 따름이었다. 메뉴 표의 가격 표시 맨 앞자리 숫자가 종이로 덧 씌워져 있었다. 최근에 급히 올린 가격들이었다. 새로 종이 위에 적힌 숫자는 두 자리
다둥이 아빠 마흔넷의 그는 자녀가 넷이라고 했다. 큰애가 중학생이래서 깜짝 놀랐다. 앳돼 보이기까지 한 그의 동안(童顔)이 부럽기도 했다. 마흔 전후의 미혼이 수두룩한 요즘 세태에서 보기 드문 일이기도 했다. 결혼을 선택사항이라 여기고, 굳이 자녀를 낳고 싶지 않다는 요즘 젊은이들 아닌가. 분명 흔하지 않은 일이어서 그랬을까. 그가 반가웠고 부러웠고 고마웠다. 심지어 그가 지난 시기 애국지사처럼 우러러보이기까지 했다. 저출산 현상으로 조만간 지방이 소멸되고, 급기야 멀지않은 시기에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이라는 미래예측 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푹 빠졌다.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다. 매주 2회 분량씩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업체를 통해 공개되는 탓에 기다림이 감질나기조차 하다. 한밤중에도 텔레비전을 켜서는 새로운 회차가 업데이트됐는지 확인하곤 한다. 주인공 우영우는 비록 자폐스펙트럼을 가졌지만,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덕분에 대형 로펌 변호사로 취업한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래’에 집착하는 우영우
해운대 해변열차 해운대역을 출발한 비둘기호 열차가 미포에 다다르면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드넓은 바다가 나타난다. 승객들의 시선들은 일제히 바다 쪽 창가로 몰려든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시선들이 아수라장을 연출한다. 허공 속에서 서로 맞부딪힌 시선들은 으르렁거리면서도 바늘 틈 같은 빈곳을 찾아 서둘러 빠져나간다. 벌써 바다 쪽 창을 선점한 시선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야호, 바다다, 동해 바다다! 한 술 더 뜬 한마디에 앞서서 비명 지른 쪽이 이내 수그러든다. 와, 태평양이다! 승객들의 흥분으로 가득 차 폭발직전이 돼버린 열차는 미
"그때 세존은 공양하실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시었다. 그 성안에서 차례차례 걸식하시고 나서 본래의 처소로 들어오시어 공양을 드시었다.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시었다." 금강경의 도입부분입니다. 석가모니가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을 하고, 걸식한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식사후 강의 준비를 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재세시에 스님들은 걸식을 해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생계수단은 오로지 발우이고, 발우와 함께 걸치고 있는 옷이 스님들
지하철 객차 속 꼴불견 평소와는 달리 지하철 좌석에 앉으면서 다리를 살짝 벌렸다. 사타구니 피부질환 때문이다. 땀이 차서 습해지면 도지므로, 될 수 있으면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주치의의 엄명이 손쉽게 공중도덕을 뿌리치게 했다. 그래도 ‘쩍벌남’(지하철이나 버스 등에 있는, 여러 명이 함께 앉는 좌석에서 다리를 넓게 벌려 앉는 남자들을 가리키는 말)을 쭉 경멸해왔던 탓에 옆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남자들은 하나 같이 두 다리를 쩍 벌린 자세다. 다만 벌어진 다리의 각도는 제각각이다. 10도 정도 오므린 남자에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