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노랗게! 해가 중천을 지날 즈음 무료함이 나를 거실 창가로 내몰았다. 갑갑하고 답답하던 가슴을 허공에라도 툭툭 털어버릴 요량으로 창을 열었다. 

흐릿한 동공이 아파트단지 내 벚나무의 정수리로 힘없이 떨어졌다. 쿵! 순간 산속 호수처럼 죽은 듯 잠잠하던 가슴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풍덩! 파문은 벚나무 정수리에 떨어진 내 동공이 일으켰고, 가을의 영혼소리로 내 귓전을 파고들었다.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닫힌 창에 부딪혀 땅으로 우수수 떨어지면서 지축을 흔드는 비명으로 아파트단지를 출렁거리게 했다. 상큼, 발랄, 찬란함, 슬픔, 쓸쓸함, 처절함. 눈과 귀, 코를 통해 내면으로 들어온 묘한 감정들이 서로 버무려져 계속 거실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노랗게 물든 가슴을 끌어안고 현관문을 나섰다. 

해가 저물어가는 마당에는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다. 작은 바람이 일자, 스스스스,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서 내 시선을 유혹했다. 조심스레 마당을 걸었다. 한걸음, 두 걸음, 발을 뗄 때마다,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발바닥을 타고 정수리까지 전해져 눈, 코, 귀의 무뎌진 감각을 벼려낸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의 칼날이 노란 가을을 발갛게 피투성이로 만든다. 귀뚜라미의 비명이 가을행렬의 선두에 서서 행진나팔을 불어댄다, 요란스럽게!

 

[출처] https://blog.naver.com/onn2012| [작성자]배려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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