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이나‘ 선배’라는 호칭에 익숙하다.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게 확인되면 스스럼 없이 그렇게 부른다. ‘민증’을 깔 수 없으니 상대방의 말이 곧 진실로 확정된다.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정해진 호칭이 뒤늦게 알게 된 상대의 나이에 곤혹스러울 때도 없지 않다. 나이어린 사람을 ‘형’이나 ‘선배’로 깍듯하게 대해온 오랜 관행을 금방 바꾼다는 건 그동안의 관계를 서먹하게 할 수 있어 모른 척 할 수밖에.

  ‘∼(이름)씨’나 ‘∼(직책)님’ 같은 우리사회 주류의 호칭보다는 ‘형’이나‘ 선배’에 익숙하게 된 데는 나의 첫 직장인 언론사와 깊이 관련돼 있다. 기자들끼리는 흔히 ‘형’과 ‘선배’로 통용됐다. 다른 호칭은 선배들에게 힐난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차장이나 부장, 국장 같은 간부들에게도 ‘부장님’이나 ‘국장님’으로 부르면 선배들이 불호령을 내렸다. 그냥 ‘부장’이나 ‘국장’으로, ‘님’이라는 존칭을 잘라먹어야 했다. 아마도 밀착취재를 하면서 필히 부딪히게 될 엄중한 계급의 벽을 수평적인 호칭훈련으로 극복하려는 속뜻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물어보지 않았으나, 지금 곰곰 생각내보면 그럴 듯해 보이는 이유이다. 또 ‘형’이나 ‘선배’ 호칭이 상대에게 친근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형’이나 ‘선배’라고 부르면 괜히 그에게 더 호감과 정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물(그는 기자로, 법조팀장이었다)이 당시 출입처 간부들과 “형”, “동생” 하는 사이라고 해서 뇌물 제공 등 비리 가능성에 더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기자라는 신분을 감안하면, 나의 경우에서 보듯, 직업상 ‘나이 많은’ 그들에게 ‘부장님’ ‘국장님’ 하고 부르는 대신에 “형!” 하고 호칭했을지도 모른다. ‘형’이라 불렀다고 엄청 가까운 사이였을 거라는 세간의 입방아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호칭은 권력이라기보다는 습관이다. 돈을 너무나 순진하게 이해하려는 이들이 어리석을 뿐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onn2012 |작성자 배려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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