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인증평가를 무사히 마쳤다. 하루, 정확히 7시간 걸렸다. 이 평가를 제대로 받으려고 서너 달 전부터 수많은 직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별도로 TF팀을 꾸려서 매주 회의를 갖고, 주요 점검항목들을 꼼꼼히 정리하고, 관련 자료들을 세세히 챙겼다. 핵심 관계자들은 카카오톡 대화방을 개설해서 실천 여부를 확인하고, 미진한 부분은 다시 일정까지 정해서 체크했다. 일상으로 하는 일들이지만, 평가 당일 인증위원들에게 지적당하기라도 하면 조직 전체에 누를 끼칠까 직원들은 정리하고, 외우기를 몇 날을 계속했다. 다행히 인증위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비로소 긴장의 빛이 사라진 간부들의 얼굴에는 미소로 채워졌다.

 

  직원들의 하루도 240시간으로 다가갔을 터이다. 아침부터 손 씻기나 감염·환자 안전관련 매뉴얼들을 외우면서, 제발 인증위원들에게 지목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빌고 또 빌었을 터이다. 복도를 지나칠 때 여느 때보다 더욱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면서도 인증위원들의 돌발 등장에 털이 곤두섰을 법하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 무렵 같은 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막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맥 풀린 목소리로, 평가받은 오늘 하루의 긴장감을 주절거리면서 밥을 사달라고 투정했다. “며칠 동안 실컷 외었는데 써먹지도 못하고…. 괜히 헛힘만 쏟은 기분이야, 아빠!” 아쉬우면서도 허탈해하는 아이에게 수고했다는 말로서 때웠다, 밥은 다음에 사주기로 하고.

 

  평가는 늘 사람들을 괴롭힌다. 과정의 치열함이 있기에 차라리 뒤끝을 허무하게 한다. 오늘도 하루 종일 국감장에 붙잡혀 있던 정부의 숱한 고급 두뇌들이 업무를 마치면서 해방감을 만끽하기에 앞서 평가 뒤끝의 허망함에 몸서리 칠 거다. 정책 감사를 한답시고 갖가지 요청했던 산더미 현안 서류들을 쌓아둔 채 하루 종일 ‘대장동’이니 ‘고발사주’니 하는 정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국감장의 공무원 마음도 내 아들의 심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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