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4월초였던가. 날짜는 이미 내 기억미로에서 실종된 지 오래다. 6개월 전 제대하고 대기업 취업 준비하던 중 정신무장이나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시골 고향친구 셋이 지리산에 오르기로 했다. 사전에 아무준비도 없었다. 지리산에 대한 정보라고는 지리수업에서 배운 대로 높이 1915미터로 남한에서 한라산에 이어 두 번째 높은 산이라는 것 빼고는 아무 것도 몰랐다. 우리는 배낭 하나씩 달랑 둘러메고 지리산에 들어섰다.

 

  우리 계획은 중산리 법계사에서 하룻밤 잔 뒤 곧바로 천왕봉에 올라 대원사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마치 동네 뒷산 오르듯 미련한 곰처럼 지리산에 덤벼들었다. 산에 오르고 걷는 데는 자신 있었다. 동네 뒷산을 평지 달리듯 한 산골 촌놈들이었으니까. 별다른 어려움 없이 천왕봉에 올라서 간단한 정상정복의 세리모니를 한 셋은 대원사 계곡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4월의 지리산은 곳곳에 겨울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햇볕 잘 들지 않는 북측 사면엔 여전히 발목이 빠질 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제 아무리 토끼처럼 산을 뒤놀던 우리였지만,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 걷기는 몹시 힘들었다. 하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기진맥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허기진 우리는 산등성이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려 했으나 물이 없었다. 망설인 끝에 쌓인 눈을 퍼 담아 버너에 불을 붙였다. 냄비 속 흙탕물에 황급히 라면을 끓였다. 누구도 더럽다고 수저질을 주저하지 않았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라면을 해치웠다. 도중에 치밭목 산장에서 하룻밤 잘까 하다가 포기하고 당초 계획대로 대원사 계곡 길로 향했다. 우리가 의지할 데라곤 길 곳곳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뿐. 그것만 보고 걷고 또 걸었다.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겨우 내려왔던 길을 다시 치올라가서 이정표를 다시 확인하고 하산했다.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고향 뒷산의 밤보다 지리산의 밤은 훨씬 짙고 깊었다. 마지막 하산 길 두어 시간 동안 거의 기다시피 해서 길을 걸었다. 엉금엉금. 발을 헛디뎌, 나무둥치에 걸려,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를 십 수 차례. 비로소 세 촌놈의 가슴 속에서 죽음의 공포가 똬리를 틀고 앉았다. 산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오전 10시 법계사에서 출발한 우리는 천왕봉을 거쳐 치밭목 산장을 지나 대원사 앞 계곡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저녁 10시. 천왕봉에서 잠시 머물고, 라면 끓여먹은 시간 몇 십을 빼고는 쉬지 않고 걸었다. 절의 불빛을 보고서야 셋은 비로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이후 나는 두 번 다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지 않았다. 지난휴일 텔레비전에서 국립공원 지리산 산악구조대원(레인저)들의 활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36년 전의 젊은 객기가 떠올라 다시 한 번 소스라치게 온몸을 떨었다. 어떤 산이든, 아무리 야트막할지라도, 산에 대한 경외감을 품고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그때의 경험이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다. 직접 오르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주말마다 이 드라마를 통해 내 20대의 지리산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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