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등짝 자작하게 집을 나섰다. 섭씨 18도. 해가 솟기 전인데도 이 정도면 아직도 여름의 울타리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냉방기 끈 지하철 객차는 이른 아침부터 후덥지근했다. 행여나 추위에 보온 삼아 목에 칭칭 감은 스카프가 답답했다. 목 언저리가 끈적거려서 끝내 스카프를 풀어헤쳤다. 아직 여름인가 싶었다. 11월의 날씨치곤 너무 따뜻했으니까.

 

  퇴근길 온천천 갈맷길을 내려서다 멈칫했다. 개울물이 넘칠 듯 길섶을 기웃거리는 게 아닌가. 곳곳에 놓인 징검다리는 개울 깊이 잠겨 있었다. 갈맷길도 푹 젖어 있었다. 길 곳곳엔 물웅덩이까지 길손의 발목을 붙들었다. 무더운 한여름에 들이닥친 폭우의 뒤끝과 다를 바 없었다. 한데 바람은 거셌다. 그 속에 품고 있는 한기는 동장군의 칼끝에 서린 서슬보다 더 시퍼렇게 느껴졌다. 추웠다. 세찬 바람에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아침에 풀어헤친 스카프를 다시 목에 칭칭 둘러맸다. 손끝이 시렸다. 오래전 갑작스런 추위에 넣어뒀던 재킷 호주머니의 장갑까지 꺼내 끼었다. 거의 동장군에 맞서 갑옷과 투구까지 갖춘, 겨울 전장에 나선 차림새였다. 콸콸 흘러내리는 요란한 물소리를 담아내는 귓바퀴 위로 날카로운 칼바람이 스친다. 소스라치게 놀란 몸이 얇은 춘추복 속으로 움츠러든다.

 

  입동(立冬) 다음날, 하루 속에 녹아든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기후변화가 갈수록 두렵다. 미래 세대들의 삶이 걱정스럽다.

저작권자 © ONNews 오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