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에 들어서자 지하철 객차의 문이 열려 있었다. 냅다 달려서 후다닥 안으로 뛰어들었다. 퇴근시간대라 배차간격이 촘촘해서 그리 서두를 필요까지 없는데도 버릇처럼 객차를 향해 돌진한다. 가픈 숨을 고를 즈음 여전히 지하철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이어폰에 막혀 있는 나는 말귀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10분이 지나도 객차는 움직임이 없었다. 장내 스피커 소리가 지하를 쩌렁쩌렁 울렸다.

 

  비로소 귀에서 이어폰을 걷어내고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역에서 차량 고장으로 지하철 운행이 전면 중단되고 있다는 거다. 스피커 목소리는 긴박성을 담고 있었으나, 메시지 내용으로는 심각성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계속해서 어느 역의 차량고장으로 양 방향 모든 차량의 운행이 중단되고 있다며, 거듭해서 양해만 요청했다. 20분이 지나자 요금을 돌려드릴 테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고 간청했다.

 

  바늘구멍조차 들어설 데 없이 붐비던 승객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텅 빈 객실에는 내 두려움으로 가득 채워졌다. 조바심이 몰려왔다. 얼마쯤 더 기다려 달라는 안내라도 있기를 기다렸으나 들을 수 없었다. 두려움에 떠밀려 객차를 빠져나오다가 승강장의 역무원에게 물었다.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역무원은 20, 30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그때는 이미 운행이 중단된 지 30분쯤 흐른 뒤였다. 포기하기도, 그렇다고 서면에서 구서동까지 복잡한 퇴근길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기도 망설여졌다. 교통체증을 떠올리니 내 속에서 체증이 스멀거렸다.

 

  당장 불이 난 것도 아니고, 그동안 기다린 김에 조금 더 기다리기로 하고 다시 객차에 올랐다. 뜻밖에 자동문이 곧바로 닫히면서 오랜 기다림이 종료됐다. 늘 서서 가야했던 객실에서 나는 편안하게 앉아서 퇴근할 수 있었다. 고진감래였다. 기다림 끝에 누린 소소한 행복이었지만, 앞으로 운행 중단 시엔 대략적인 예측일지언정 ‘얼마쯤 기다려 달라’는 안내 메시지를 빠뜨리지 않기를 지하철 당국에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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