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앞 제단에 상차림을 펼쳐놓기가 무섭게 벌이 날아들었다. 덩치로 봐서 말벌로 보였다. 그 당당한 위세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벌은 거리낌 없이 제단위에 내려앉았다. 껍질이 살짝 벗겨져 단내 폴폴 풍기는, 커다란 사과 위에 우아한 자세로 앉았다. 언제 불시에 우리를 공격할지 몰라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 말벌과 우리와의 거리는 불과 1m 남짓. 한순간 말벌의 공격의지만으로도 우리는 꼼짝없이 당해야 할 만큼 가까웠다. 다행히 말벌은 뾰족한 입을 부드러운 사과 속살에 처박듯 먹이활동에만 골몰했다. 배불렀을까, 너무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성가셨을까. 말벌은 갑자기 우리 쪽으로 날아와 빙빙 날아다니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다들 잔뜩 겁에 질렸다. 옷깃을 여미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몸을 납작 앞으로 엎드리듯 수그렸다. 그때부터 우리는 말벌과 치열하게 눈치싸움을 벌여야했다.

 

  그냥 덮쳐서 없애버릴까요? 가장 겁에 질려 있던 내 제안에 함께 있던 가족들은 손사래 친다. 말은, 하찮은 미물이라도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 그러지 말자, 고 했으나 속내는 다를 거라고 내 나름대로 짐작했다. 묘지 속에서 잠들고 있는 부모 생각에 말벌 죽이기가 마뜩찮았을 거라고. 우리는 단내에 푹 빠진 말벌을 딴 데로 유인하기로 하고, 사과 껍질을 우리와 3m쯤 떨어진 묘지 담벼락으로 휙 던졌다. 다행히 제단의 말벌이 그쪽으로 옮겼다. 장인장모의 묘지를 떠날 때쯤 외려 말벌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두 분을 외롭지 않게 주변을 지켜줘서. ‘죽이지 말라’는 처형의 진짜 속내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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