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쉴 새 없이 건물을 오르내리다가 겨우 11층에 서서 다리를 푼다. 홀몸이래도 숨이 차고 다리근육이 뒤틀린 법한데 사람들까지 등에 잔뜩 짊어져야 하는 신세니. 매주 한두 차례 과로로 몸 져 눕지만, 휴식을 주기는커녕 진통제 처방만 하고는 또 다시 계단 속으로 내몰리는 신세다.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데 심장이 찌릿하다. 그리고 망막에 비친 글자, ‘B2’. 열한 개 층을 쏜살같이 내려가야 한다. 늙은 몸이라 관절 마디마디마다 덜거덕거리는데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힘들다. 덜커덩, 덜커덩! 내리 딛는 걸음마다 그 무게감과 속도감에 몸뚱이까지 몹시 흔들린다. 해쓱한 70대를 등에 업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른다. B1, 1, 2, 3, 5, 6, 7층…. 층층이 겹쳐 업는다. 다리가 후들후들해진다. 시시포스보다 더 혹독한 제 신세를 한탄할 뿐이다.

 

  하데스에서 언덕 정상에 이르면 곧바로 굴러 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계속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인간, 시시포스(Sisyphos : 시지프, 시지프스, 시지푸스 등으로 불린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에피레에 사는 시시포스는 어느 날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납치하는 것을 목격하고 아소포스에게 이를 알렸다. 이를 알게 된 제우스는 크게 화내며 죽음의 신을 시시포스에게 보냈으나, 그는 되레 자신을 데리러 온 죽음의 신을 꽁꽁 묶어버렸다. 죽음의 신이 제 할 일을 못하자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고, 이에 곤란해진 전쟁의 신 아레스가 죽음의 신을 도와 구출했다. 죽음의 신이 풀려나자 시시포스는 할 수 없이 지하세계로 가야 했고, 죽기 전에 아내 메로페에게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자신을 땅에 묻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자신의 당부를 듣지 않은 아내를 징벌하러 다시 지상으로 왔고, 그 상태로 천수를 누렸으나, 결국 죽음의 신을 속인 죄로 시시포스는 하데스에서 언덕 정상에 이르면 곧바로 굴러 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계속 밀어 올리는 벌을 영원히 받게 되었다는 거다.

 

  병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문득 시시포스가 떠올랐다. 사람들과 함께 굼뜬 엘리베이터를 타박하다가, 시시포스 신세 같은 그가 갑자기 측은하게 느껴지는 거다. AI 시대를 맞아 기계에게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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