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흐른다. 아파트 언덕배기 길 위에서 낙엽들이 조르르, 물처럼 흘러내린다. 밤새 홍수라도 졌을까. 한여름 큰 물 지듯 길이 온통 황갈색으로 흐른다. 깎아지른 각도에 따라 때로 세차게, 때로 보에 갇힌 듯 멈췄다 흘러내린다. 위에서 아래로. 정확히 중력의 법칙을 따르지만, 때때로 길은 거꾸로 치오른다. 물길처럼 출근길을 내맡기고 멍하니 함께 흘러내리던 내 발길 위로 황톳물처럼 낙엽들이 덮친다. 흙탕물에 놀란 듯 발길이 서둘러 신발 위에 쌓인 낙엽들을 쿵쿵, 털어낸다. 다시 길은 순리를, 중력의 법칙을 따른다. 위에서 아래로 조르르. 흘러내린다.

 

  길 위에 제 몸을 맡긴 채 위에서 아래로 조르르, 흘러내리던 낙엽이 심심한 듯 나를 유혹한다. 팔랑팔랑, 길 위에 드러누운 채 배를 뒤집는다. 늘 불면에 쫓기는 초로의 흐리멍덩한 눈이 이를 금방 눈치 채지 못한다. 흐르는 길을 따라서 성큼성큼 떠내려가던 낙엽들이 쪼르르, 급물살 타듯 다시 나를 앞지른다. 서너 걸음 앞선 낙엽들이 갖은 재롱을 피운다. 손가락을 볼에 대고 혀를 쏙 빼는, 유년의 나를 소환이라도 하듯 구닥다리 놀림으로 초로를 앙증맞게 자극한다.

 

  바람 부는 11월, 대한민국 도시에서 흔한 풍경이다. 거기엔 길 위에서 가을이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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