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게이트(자동개집표기)에 다가가다 깜짝 놀랐다. 앞서 들어가는 이의 뒤태가 나보다 10년은 더 젊어보였다. 지하철 게이트는 그런 그를 어르신으로 ‘공손하게’ 대우하는 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게이트의 바를 밀치고 들어설 때마다 아가씨는 상냥한 목소리로 영접했다. 숱 많은 검은 머리카락, 잘 관리된 날씬한 몸매, 젊은이들이 즐겨 입은 패션 스타일 등으로 미뤄봐 갓 쉰을 넘을 듯했는데, 그는 이미 어르신 대우를 받고 있었다.

 

  뒤이어 서둘러 출근길에 쫓긴 꾀죄죄한 차림의 노인이 지하철 게이트에 카드를 갖다 댄다. 나는 속으로, 감사합니다!, 하는 상냥한 아가씨의 목소리를 예상했다. 뜻밖에도 게이트를 지키는 ‘아가씨’는, 마스크를 착용합시다!, 하고 상냥함 대신에 상투적인 어투로 말하는 게 아닌가. 키 작은 그의 머리숱은 듬성했다. 등까지 굽은 그가 아직도 돈을 내고 지하철을 이용하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혹시 ‘노인네’나 ‘틀딱충’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싫어서 아예 유료 교통카드를 휴대하고 다니는 건가.

 

  언젠가 그해 막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섰으나 일부러 교통카드를 이용한다는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가뜩이나 공짜타기가 거북한데 굳이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로 다른 승객들에게 노인네 표시를 드러낼 이유가 있을까 싶어 불편한 처사로 느껴졌다. 4년 뒷면 나도 지하철을 공짜로 타게 된다.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감사합니다!, 하는 아가씨 목소리를 감내해야 할 걸 떠올리니 괜히 마음이 움츠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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