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세월호 사고뿐만 아니라 올해는 유난히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고 이에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마치 전 국민이 참사 트라우마에 갇힌 듯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우리 사회가 이런 트라우마를 빨리 극복하지 못한다면 사회 전반의 정신적·정서적 건강이 크게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트라우마란 성폭행, 재난, 전쟁 등 크고 끔찍한 사건을 겪었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을 직접 겪든 아니든, 사건이 크든 작든 인간이 겪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트라우마의 유형은 다양하다. 가족이나 친한 지인의 죽음, 성폭행, 세월호사건, 전쟁같이 끔찍하고 규모가 큰 사건·상황에서부터 미디어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한 일, 단순히 친구에게 놀림을 받던 일, 집을 떠나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던 일, 물에 빠지던 일, 모두의 앞에서 상사에게 무시당한 일 등 일상 속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모두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마음에 깊이 상처를 입힌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가리킨다. 사건의 크기에 따라 전쟁·성폭행 등은 ‘큰 트라우마’, 일상 속 사소한 행동·말은 ‘작은 트라우마’로 나눈다. 모든 일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트라우마가 되는 데 중요한 요인이 사건의 크기·심각성보다는 이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개인감정이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트라우마는 심리학적으로 다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트라우마가 생길 때의 뇌 활동, 트라우마가 치료되기 전후의 뇌 변화 등이 생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제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트라우마는 뇌의 편도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뇌 안쪽 변연계의 편도와 해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협업해 처리하고 저장한다. 편도는 ‘무의식’, 해마는 ‘의식’과 연관된 반응과 기억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지렁이를 보고 뱀인 줄 알고 본능적으로 화들짝 놀라는 것은 편도의 반응이다. 놀란 뒤에 ‘뱀이 아니고 지렁이네, 진정하자’라고 인식해 반응하는 것은 해마의 작용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당시 감정을 편도와 해마가 각각 나눠 저장한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사건이 생기면 이 협업 시스템이 붕괴된다. 불안·공포를 크게 느껴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급증하고, 완화·안정을 담당하는 세로토닌은 감소한다. 이로 인해 편도는 평소보다 과하게 활성화되고, 해마는 억압된다. 해마의 역할이 적어지면서 기억 저장 시스템이 닫히고, 트라우마의 대부분은 편도에 저장된다.

 

트라우마로 인한 후유증은 다양하다.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정신질환부터 승강기 탈 때 느끼는 불안감, 당근 냄새를 맡으면 식욕이 떨어지는 증상, 무기력함·집중력 감퇴·불쾌감 같은 일상 속 불편함까지 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트라우마 후유증 중 하나는 ‘과민 반응’, ‘불신’ 등이다. ‘악몽’도 자주 꾼다. 어떤 사건이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더라도 치유가 가능하다. 가족·친구·성직자 등 주변 사람들이 위로해 주면서 당사자가 안전하며 외롭지 않다고 느끼게 하면 된다. 후유증이 남지 않거나, 경미하게 남거나, 남더라도 곧 사라진다. 작은 트라우마일수록 극복할 가능성이 크며, 트라우마가 생긴 즉시 대처할수록 효과가 크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찾아서 트라우마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면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EMDR 치료도 도움이 된다. EMDR은 뇌에 저장된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서 당시 상황이 다시 닥친 것처럼 만든 뒤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지금은 이렇게 살아있으니 안전하다’, ‘당시에는 어려서 힘이 없어 무서웠을지 몰라도 지금은 성인이 됐으니 그런 위험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식으로 안심하고, 다시 뇌에 저장하는 방식의 치료법이다.


온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상엽 소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고, 이로인해 후유증이 생겨 일상생활을 괴롭힌다면 전문가와 상담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라며, “그래야 지금 느끼고 있는 트라우마 감정이 공포심 때문에 생긴 것일 뿐, 실제로 위협이 되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깨달을 수 있고 상담받으면서 지금 느끼는 증상과 비슷한 과거의 경험을 천천히 떠올리면 무의식 속 기억을 끄집어내어 치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또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정도의 트라우마는 신속히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치료해야만 한다”며 “무엇보다 환자 자신이 치료를 하고자하는 의지와 치료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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