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진(소동진 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늘 그랬듯이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다. 꼿꼿이 앉아 ‘의사’로서의 그의 소회를 잔잔히 피력했다. 듣고 있는 사람마저 이내 그의 온화함에 푹 빠져든다. 그는 ‘소동진 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으로 한 평생을 살아왔다. 부산의대를 졸업한 그는 부산시의사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의사협회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는 부산지역 의료계의 원로이기도 하다. 온화함 속에 감춰진 그의 카리스마는 사단법인 부산건강대학을 단숨에 부산지역 최고의 평생 건강교육기관으로 끌어올렸다. 의사인 그가 건강대학의 최고 책임자로 자임함으로써 강의의 질적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는 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강대학 내의 갈등 조정에도 탁월했다. 수강생들이 대부분 어르신들이어서 작은 일에도 의견 충돌이잦았으나, 소동진 이사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재빨리 화해시켰다. 그가 초석을 다져놓은 부산건강대학의 교훈이 ‘건강, 사랑, 희망, 봉사’다. 이것은 그가 지금껏 추구해 온 인생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그에게 의사는 어떤 사람일까. “의학을 환자에게 직접 시혜함을 의술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하며, 의사는 인간의 질병 예방과 치료, 그리고 건강향상이라는 숭고한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는 인술의 실천자입니다.” 결국 의사는 의술보다는, 인술을 펼치는 게 주요 덕목이란 게다. 해방 전에 태어난 소동진 원장은 6. 25 동란 등 격변기에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주위에 가난하고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수많은 이웃들을 보면서 자랐다. 이런 어린 시절의 체험은 소년 소동진을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물론 그가 의대에 진학하던 시기엔 의사
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던 시대였던 것도 소년의 결심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의대를 졸업하면서 전공과목을 놓고 잠시 흔들렸으나,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경외감’, 이것이 그를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했다.

 

소동진 소아청소년과의원은 서면에서 개원 역사가 꽤 깊은 의료기관 중 하나다. 이러다보니 그의 환자들은 이대에 걸쳐 있기도 하다. 개원 초기 그에게 진료 받았던 아이가 커서 결혼 이후 아이들을 데려와서 그의 진료실을 두드린다. 생의 많은 부분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의사와 환자들이 뒤엉킨 ‘소동진 소아청소년과의원’ 진료 대기실은 마치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다. 주름진 얼굴을 만지는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 끼에도 그는 그저 빙그레 미소 짓은 천상 동네 할아버지다. 요즘 저 출산 추세 탓에 한 자녀 가정이 많은데, 엄마들의 아이사랑이 좀 극성맞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소동진 원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극성맞다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요즘엔 아이를 하나, 아니면 둘만 놓는 가정이 늘어나다 보니 엄마들이 아이 사랑에 어느 때 보다 각별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이가 아플 때 그 윗대로부터 전해들은 민간처방에 매달렸지만,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주 똑똑합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엄마의 의학지식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이런 똑똑한 엄마들 덕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늘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국민의 의료에 대한 욕구는 다양해졌으며 의료기관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당연히 의료 경영환경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의과대학 6년, 이후 5년 이상의 고된 수련 ·전공의 과정을 거쳐 의사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생존경쟁에 내몰린다. 특히, 진찰료의 본인부담금이 공중목욕탕의 목욕비보다 낮은 건강보험수가는 많은 의사들을 비참하게 한다고 그는 걱정한다. 경제적으로 별로 풍요롭지 못하고 매일 긴장 속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아주 힘들고 고달픈 직업인이 의사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동진 원장의 인술론에는 진료하는 의사뿐만 아니라, 의사의 사회적 책무도 무척 강조한다. “의사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은 간 곳이 없고 불확실한 미래,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변함없는 자
세로 국민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사명감과 소명의식으로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보듬으려는 헌신적인 자세야 말로 여전히 후배 의사들이 지켜야 할 의사로서의 덕목입니다. 후배 의사들이 이를 실천할 지혜를 갖고 있는 걸 알기에 선배들은 행복할 따름입니다.”

 

의사 소동진은 이웃들에겐 지혜로운 어르신으로 다가간다. 언젠가 그가 부산건강대학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노인이 뜻하는 게 무언지 아십니까. 노인이라는 글자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노인(老人)은 노인(怒人)이 아닙니다. 화를 내는 사람이 노인이 아닙니다. 나이든 우리 노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화를 잘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화를 잘 다스려야 젊은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노인(老人)은 외려 노인(努人)이어야 합니다. 늘 노력하는 사람이 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노인들이 가장 마지막 으로 지향해야 하는 단계는 노인(露人)입니다. 화를 잘 다스리고, 늘 노력하면서, 이슬 같이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참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동진 원장, 그는 우리사회의 참 의료인이고, 참 어르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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