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닥터스 네팔 지진 의료봉사단 활동을 돌아본다

지난 4월 마지막 주말 부산 근교로 의료봉사를 떠나면서 처음으로 네팔 지진 소식을 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 피해 규모는 히말라야 눈사태처럼 커져갔다. 그냥 지진이 아닌 재앙이었다. 2004년부터 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를 이끌고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미얀마 등 지진이나 지진해일 피해 지역을 쫓아다닌 터라 언론 등에서 이번에도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결국 5월 첫 주말 그린닥터스 네팔 긴급봉사단은 단출하게 꾸려졌다. 나를 포함한 의사 넷에 간호사 둘, 물리치료사, 응급구조사 등 모두 열넷이었다. 동행하는 취재기자를 빼면 열둘뿐이다.


■천국가는 하이웨이
카트만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이튿날부터 자진 피해 지역을 찾아 나섰다. 숙소에서 1시간쯤 달렸을까. 사방이 험한 산들로 둘러싸였다. 히말라야산맥으로 진입했단다. 고산준령 탓에 시야가 트인 곳은 오로지 파란 하늘뿐이다. 누군가 "천국 가는 하이웨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없을 것이다. 해발 2000m 산위를 가로지르는 도로의 폭은 겨우3m 남짓. 길섶 너머로 천길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누군가의 표현처럼 천국행(?)이다. 낭떠러지에 오금이 저린 대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사만 신났다. 씽씽 달린다. 산길이라 굽이굽이 커브길이다.

 

가뜩이나 험한 산길은 지진으로 무너지고 파였다. 때론 커다란 돌이나 흙더미가 가로막아 차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장애물을 치우고 차를 빼내면 또 앞으로 나아가기를 수차례 되풀이했다. 곡예운전은 4시간 반이나 이어졌다. "아, 신이시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땅, 이곳에 이런 재난을 주셨습니까?"

■맨바닥 진료소
시골마을엔 아무것도 없었다. 대나무를 기둥 삼은 군인들의 천막을 빌려 임시진료소를 설치했다. 전기가 없어 현지 선교사에게 마련해준 발전기로 돌렸다. 내과 2곳, 안과 1곳, 외과 1곳, 소아과·피부과 1곳의 진료소에다 재활물리치료실을 갖췄다. 의료진은 그냥 맨바닥에 주저앉아서 환자들을 돌봐야 했다. 지진이나 지진해일 지역 등 재난 지역에서 수차례 응급진료를 해본 나로서도 맨바닥 진료는 첫 경험이었다.


환자들이 구름떼로 몰려왔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눈을 다쳤다가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해 봉와직염으로 두 눈이 퉁퉁 부어오른 아이가 그저 가여울 따름이다. 40도를 넘나드는 고열로 뇌수막염을 앓고 있는 아이에게 급히 3세대 항생제를 투여한다. 천막진료소의 허공에는 수액을 매단 생명줄이 대롱거리고 있다. 하얀 링거병과 멀리 설산 히말라야의 새끼 봉우리들이 파란 하늘 위에서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진으
로 바위가 굴러떨어지면서 아이의 이마를 스쳤다. 이마가 손바닥만 하게 찢어졌으나 그뿐, 상처는 이미 상당히 곪아 있었다. 메스로 째서 고름을 뽑아냈다. 아이의 비명이 치료하는 그린닥터스 대원들의 가슴을 도려낸다. 네 명의 청년이 한 할머니를 천으로 된 보자기를 들것 삼아 옮겨왔다. 스스로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전신마비 환자였다. 아마 이번 지진 피해자는 아닌 듯했다. 외과전문의와 물리치료사가 달려들어 주사 처방과 테이핑 요법으로 아픈 부위를 다스렸다. 모두 긴장했
다. 강보(?)에 싸인 채 천막 안으로 들어섰던 할머니는 두 발로 걸어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일행 중 목사가 연방 `할렐루야!` 하고 외쳤다.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벼워
이른 아침 7시에 나섰다가 밤 10시쯤 숙소에 돌아오기를 일주일간. 강행군에 지친 대원들의 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마음만은 새털처럼 가볍다. 재난 지역을 찾을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경구처럼 다가온다. `인간은 자연의 힘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자연의 이 무한한 위력을 극복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의 무한 사랑뿐이다.` 재난에 맞서 온몸으로 서로 돕는 손길과 손길이 네팔과 대한민국을 하나로 엮어갔다. 그린닥터스는 지난 8일 네팔 땅을 떠나면서 내년 핵심 사업을 `2016 네팔드림 프로젝트`로 정했다. 네팔의 재건사업에 작은 디딤돌 하나 놓겠다는 것이다. 사랑의 5월 첫 주를 `사랑이 절실한` 네팔에서 보냈다.

 

나마스테(서로존중하고 안녕을 비는 네팔 인사말) 네팔!


<정근 그린닥터스 네팔봉사단 단장, 정근안과병원 병원장>
※이 기사는 5월 14일 매일경제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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