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닥터스 의료봉사단 네팔 재방문, 신두팔초크 등 고아원에서 2,000여명 진료

수요일 새벽 4시쯤 눈을 떴다. 우두두둑. 허름하고 낡은 창을 통해 빗소리가 먼저 우리를 깨운다.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특히, 정근 박사와 최경현 진료원장(온종합병원), 임영문 목사(평화교회), 이대경 그린닥터스 사무총장은 살짝 가슴마저 설렜다. 지난 5월 이마에 응급수술을 했던 네팔소녀를 만나러 신두팔촉 멜람지로 떠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애당초 이번 의료봉사의 의미는 그 아이가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멀고 험한 길이라 일찍 일어나 준비했건만 빗길 탓에 차량 도착이 지연되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졌다.

28명의 그린닥터스 봉사단은 모두 6대의 지프에 몸을 싣고 멜람지로 향했다. 지난 5월 지진 때 이미 천 길 낭떠러지를 겪었던 최경현 원장의 어깨에 벌써부터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구불구불한 비포장 길을 쉼 없이 달렸다. 길은 차 두 대가 서로 비껴가기도 힘들 만큼 좁았다. 게다가 지진에 약해진 지반에 우기의 빗물까지 덮쳐 산허리 곳곳이 무너져 내렸다. 소녀가 사는 게우라니로 가는 길도 빗물에 끊어졌단다. 대원들은 모두 차에서 내려 산길을 걸었다. 졸지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셈이다. 잠시 네팔의 거대한 자연을 품에 안았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의 위세에 숨길이 잠시 멈칫한다. 이내 뒤덮고 있는 초록 세상에 온몸을 맡겨 버린다. 대원들은 너나없이 가슴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한다. 폐부 깊숙이 켜켜이 쌓여있던 낡고 오래된 문명의 찌꺼기를 밀어내고 히말라야의 청정공기로 채워본다. 우리의 목적마저 잠시 잊을 즈음 길옆에 늘어선 농가들이 대원들을 다시 일깨운다. 낡은 집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하다. 낡은 판자, 슬레이트, 얇고 너덜너덜한 함석판자가 바람과 비만 겨우 가릴 뿐이다. 짐승의 우리도 저러지 않을 터. 문명인들에게 기막힌 선물을 안기는 자연, 그것을 한없이 무상으로(?) 쓰는 네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부러움도 곁눈질 한번으로 그 찌들음에 가슴 아린다. 지난 5월의 지진 피해가 그대로 인듯하다. 워낙 가난한 나라여서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한 터이다. 이런 상황이 또한 그린닥터스 봉사단을 히말라야 산속으로 이끌었을 터이다. 1시간 정도 산길을 헤맸을 즈음 의료봉사지인 걀튬에 도착했다. 12시 반이다. 꼬로록, 소리에 점심때가 됐음을 알게 된다. 급히 허기만 달랜 채 곧바로 마을 학교에서 채비를 하고 진료를 시작했다.

현장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들이 그린닥터스 봉사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5월 지진봉사 때 진료 받았던 주민들부터 당시 한국 의사들이 좋은 약을 주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주민들이 너도나도 귀한(?) 약 받으러 몰려들었단다. 네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저편에는 애타는 마음이 가득하다. 잠시의 기다림에도 임시 진료실이 마련된 학교 교실의 창 안으로 눈망울들을 밀어 넣기 바쁘다. 현지의 여자 선교사가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진료실 질서를 유지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피곤한 몸을 추스르려고 고개를 잠시 들어보니 진료실이 소란스럽다. 봉사단이 애타게 기다리던 그 소녀가 나타난 것이다. 아이는 빗물에 길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아빠와 함께 먼 산길을 걸어서 왔단다.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는 선교사의 통역에 대원들의 눈은 충혈이 되고 말았다. 엉겁결에 만나고 헤어진 탓에 아이의 이름조차 몰랐다. 수실라기니, 네팔의 꼬마천사 이름이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 뒤로 곱게 묶어낸 머리채, 짙은 눈썹, 뚜렷한 쌍꺼풀이 꼬마천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코와 귀의 장식은 그가 네팔의 딸임을 증명했다. 그린닥터스와의 인연 또한 그에게 희미하게나마 새겨져 있었다. 이마의 흉터다. 3개월 전 그를 수술했던 최경현 원장과 정근 박사가 유심히 관찰하더니 안도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수술부위가 잘 아물었다. 수술 다시만 해도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상처에 의료진들도 경악했다. 장비 부족 등 열악한 현장 사정에도 불구하고 최경현 원장은 응급수술을 감행해 성공했다. 수실리기아와 그린닥터스의 인연을 뒤늦게 듣게 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친다.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가 수실라기니를 대신해 고맙다고 인사했다. 자신의 일을 잠시 접고 천 길 낭떠러지를 뚫고, 습하고 무더운 날씨와 싸우며 의료봉사에 뛰어드는 그린닥터스 대원들도 거기서 보람을 찾을 게다.

정근 박사는 수실라기니를 뒤로 하고 또 다른 ‘수실라기니’인 한 아이를 돌보려고 급히 진료실로 향했다. 그가 만난 아이의 이름은 비케이. 지난 5월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오른쪽 눈을 실명한 생태였다. 정근 박사는 아이의 수술 필요성을 부모에게 얘기했다. 아이는 안구나 안검 위축으로 아이의 얼굴이 점점 흉해지고 있는 게 걱정이었다. 이대로 두면 나중에 어른이 돼서 사회생활 하는데 크게 불편하다. 정근 박사는 비케이를 부산으로 데려와 의안 수술을 해주기로 했다. 온종합병원 성형외과와 정근안과병원 안성형 팀이 함께 비케이를 돌볼 계획이다. 비케이는 비자발급이 이뤄지는 대로 부모와 함께 부산에 와서 한 달 정도 입원 치료를 받게 된다. 비케이는 그린닥터스와 정근박사에게 있어 또 하나의 ‘수실라기니’인 셈이다. 히말라야 산속 마을들은 어렵지만 순수하고 평화스러웠다. 네팔의 두 꼬마천사, 수실라기니와 비케이의 맑은 두 눈에서 히말라야의 별비가 쏟아지고 있다. 녹초가 된 채 숙소로 되돌아오는 그린닥터스 대원들의 눈에도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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