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감동서 신문배달업 한평생 올인 김재국 조선일보 지국장

그는 매일 새벽 2시 일터로 나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그가 쉴 수 있는 날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일손을 놓지 않는 한. 그는 40년이 다 돼 가도록 신문배달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쯤 되면 천직으로 봐야 한다. 네댓 평의 좁은 공간에서 신문지마다 광고전단지를 끼워 넣는 솜씨가 달인 수준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이 반복된 작업이 그와 그의 아내의 몸에 미친 영향을 또 어떨까. 말하지 않아도 거칠어진 그의 손에서 눈치 챌 수 있었다. 한데 그가 아내의 얘길 꺼낸다. 아마도 평생 함께 이 일을 해온 동료에 대한 배려일지 모르겠다. 그의 아내 손 또한 지문이 제대로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짓뭉개져 있다. 손가락과 손목 관절의 상태는 치료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어쩌면 크거나 작거나 그들 직업에서 오는 통증과 동행하고 있을 게다. 그가 매일 배달하는 신문부수는 2천 6백부. 그를 비롯해 모두 열두 명이 해낸다. 배달코스에 따라 저마다 걸리는 시간은 다르지만, 대개 두세 시간을 걸린단다. 여전히 학생들이 많은지?, 물어봤다. 신문배달 학생들은 전혀 없단다. 힘든 일이라 그들 스스로 기피하기도 하지만, 미팅이다 엠티다 술자리다 하면서 ‘새벽’을 빼먹는 바람에 그 자신이 학생배달원을 쓰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주부들이나 투잡을 해야 할 정도로 살기 힘든 40, 50대 성인남자들이 학생배달원의 자리를 대신했단다. 그의 말에 아쉬움이 더했다.

오래 전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신문배달이었다. 그때는 집집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학비는 부모에게 의지하더라도 용돈만은 벌어서 써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생활전선에서 녹초가 돼 쓰러져 주무시는 부모님 몰래 일어나, 새벽공기를 가르며 신문배달 학생들은 미래를 꿈꾸었다. 우리사회엔 이런 과정을 거쳐 성공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디 우리뿐이랴. 워렌 버핏, 잭 웰치, 월트 디즈니, 샘 월튼 등 미국의 억만장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이들 모두 어릴 때나 재기를 노릴 때 신문배달을 했다. ‘왜 부자들은 모두 신문배달을 했을까?’. 이런 의문을 품은 같은 이름의 책이 몇 년 전 국내에 출간됐다. 저자 제프리 폭스(마케팅컨설턴트)가 우연히 유명 기업체 CEO들이 대부분 신문배달을 했다는 사실에서 착안했다. 워렌 버핏의 경우 청소년 시절의 신문배달 경험이 사업가적 수완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버핏은 이때 자신의 배달구역을 연구해 가장 빨리 신문을 배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개발했고, 남보다 빨리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신문 접는 비법'까지 직접 고안했다. 자신만의 기술 덕분에 멀리서 베란다를 향해 신문을 던져도 종이들이 흩어지지 않아 좀 더 쉽고 빠르게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이후 버핏은 탁월한 배달 능력을 인정받아 뉴욕의 웨스트체스터라는 거대한 배달구역을 얻게 됐다.

CEO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프리 폭스가 제시하는 ‘신문배달 10계명’이 무척 흥미롭다. 절대로 빼먹어선 안 된다, 시간이 생명이다, 아프지 않게 몸을 관리해라, 휴가를 함부로 쓰지 말라, 캠프도 가지 말라, 비에 젖어 찢어진 신문은 있을 수 없다, 자전거를 관리해야 신문을 잘 돌릴 수 있다, 길을 절대로 잃어버려선 안 된다, 피곤한 생활 습관을 버려라,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 시절 신문배달을 거쳐 신분상승의 꿈을 이뤘던 사람들에게 이 ‘배달 십계명’은 ‘성공 십계명’이었을 게다. 개천에서 용 나기를 바라던, 오래전 ‘미생’들의 열정이 그리워진다. 딱히 신문배달이 아니더라도, 무슨 일을 하든 ‘신문배달의 10계명’만은 젊은 가슴 속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신문배달업 40년의 그는 우리사회의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데 한몫했다는 나는 동의하고 싶다. 김재국 국장님, 존경합니다!

저작권자 © ONNews 오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