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모른 채 지나칠 뻔했단다. 여든을 넘긴 그의 얼굴은 숫제 달덩이를 연상케 하더라고. 우리병원 근처 아파트 경로당 회장을 지냈던 할머니여서 경로당 의료봉사 때마다 나도 자주 뵀던 분이다. 정근 박사는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먼저 아는 체 하는 할머니를 찬찬히 뜯어보니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단다. 그 얼굴엔 안타까운 사연이 배어 있었다. 그는 퇴행성 무릎 관절염으로 늘 통증에 시달려왔다. 이를 안쓰럽게 지켜보던 경로당 친구 몇몇이 주사 한방으로 통증을 싹 가시게 한다는 한 병원 얘기를 전하게 된다. 그 병원의 위치도 그녀의 아파트와 아주 가까웠다. 쑤시는 통증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망설임 없이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주사 한방의 효과는 단방에 나타났다. 통증이 싹 사라졌다. 마치 하늘을 날 듯 했다. 좀 더 일찍 알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이미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할아버지할머니들로 그곳은 문전성시더란다. 계단 오르기가 히말라야 오르기보다 더 힘들었던 지난 시절이 야속하기만 했다. 무릎이 쑤실 때마다 할머니는 주사 한방에 의존했다. 급기야 통증이 사라진 할머니 몸에 이상증후가 생겼다. 얼굴에 살이 붙으면서(?) 달덩이처럼 변하기 시작한 거다. 첨엔 친구들이 회춘한다고 법석을 떠는 통에 덩달아서 기분이 취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변이 붉은 색을 띠었다. 몸도 부었다. 온종합병원에 들렀을 땐 할머니는 이미 스테로이드제제 부작용인 쿠싱증후군(Cushing's Syndrome)을 앓고 있었다. 달덩이 얼굴은 쿠싱증후군의 대표 증상인 ‘문페이스(Moon face)’였다. 뿐만 아니라 스테로이드제제 주사를 오래 맞으면 피부도 종잇장처럼 얇아져서 살짝만 부딪쳐도 살갗이 벗겨져 피가 철철 흐른다고 한다. 아무튼 그 할머니의 콩팥은 이미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우리병원에 조금만 늦게 왔어도 치명적이었을 것이라는 정근 박사의 얘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릎 통증을 완화한답시고 맞아온 스테로이드제제 주사 한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거다.

​ 그 경로당 할머니의 부은 얼굴에서 문득 시골의 어머니 얼굴이 겹쳐졌다. 평생 농사일에 시달려온 어머니도 늘 무릎통증을 달고 사신다. 때론 너무 쑤시는 통에 잠을 설치기 일쑤. ‘주사 한방으로 낫게 해주는 기적의 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들은 고향의 또래 할머니 몇몇과 몇 차례 스테로이드제제 주사를 맞았더란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내가 “다시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늘 어머니가 걱정이다. 나이 들수록 귀가 얇아지는 어머니의 발길을 ‘못된 병원’ 관계자들이 자꾸 재촉할까 해서다. 오늘 전화해서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저작권자 © ONNews 오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