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6년의 일이다. 한여름 날씨처럼 폭염까지 쏟아지는 5월 22일 아침 부산진구 부암3동 548-12번지. 부산광역시의 정중앙, 쌈지공원에 천사들이 강림했다. 주홍색 날개옷을 걸친 모습이 화려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천사라고 어여쁜 아가씨만 머릿속에 그리지 마시라. 3040 젊은 엄마아빠에서부터 6070 어르신들까지 나잇대는 다양했다. 주름진 얼굴도 있다. 하얘진 머리숱마저 듬성듬성해진 분들도 만면에 웃음은 가득하다. 그들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어린 아들딸, 손자들은 이미 그 모습 자체로 천사들이지 않나. 얘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은 그 맘씨가 천사들이다. 목사, 의사, 교수, 교사, 기업인, 회사직원, 주부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인 사회얼굴이 일요일이면 모두 천사로 돌변한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자 하나둘 씩 천사들은 저마다 주홍색 날개옷을 집어 든다. 벌건 대낮에 선녀들처럼 목욕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날개옷을 앞치마로 두르고 식사준비를 한다. 11시 30분 어른들은 배식하고, 아이들은 그늘 밑에 자리 잡은 배고픈 어르신들께 따신 밥을 날라다 드린다. ‘밥퍼천사들’ 소속 ‘천사들’이 비가 오나, 눈이오나, 더우나, 추우나, 1년 내내 매주 일요일마다 하고 있고, 해야 하는 봉사다.

​  ‘밥퍼천사들’은 홀로 사는 어르신들께 무료로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봉사단체. 어르신들 가운데 생활보호대상자들이나 자녀들의 보호로부터 제외된 차상위계층도 더러 있으나, 더 많은 사람들은 혼자 밥 먹기가 쓸쓸한 홀몸 어르신들이다. 우리 주변에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단체들은 적지 않다. 대개 주중에서 이뤄지는 터에 막상 일요일에 그냥 끼니를 건너뛰는 어르신들이 대다수란다. ‘밥퍼천사들’의 일요일 무료급식 봉사는 이런 이유에서 출발했다. 이 단체의 알파벳표기는 ‘baper angels’. ’밥퍼‘를 순 우리말화한 ‘baper’는 인도네시아말로, ‘마음에 두다’, ‘마음을 쓰다’는 뜻. ‘bawa’와 ‘perasaan’의 줄임말이다. ‘bawa’는 ‘일치하다’ ‘조화하다’는, ‘perasaan’은 ‘느낌의 결과’ ‘마음’ ‘감정’이란 뜻이다. ‘쁘라사안’이란 단어 속에 ‘모성의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니, ‘밥퍼(baper)천사들’ 봉사단은 모두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있는 셈이다.  

​  겨우 뜸들인지 두 번째인 ‘밥퍼천사들’의 무료급식 봉사현장엔 벌써부터 200명 넘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찾아온다. 밥 먹으러 오는 어르신들이나, 그들을 대접하는 ‘밥퍼천사들’에게 밥은 무엇일까.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일까. 이때 문득 떠오르는 나태주의 시 ‘밥’에서 고소한 사람냄새가 풍긴다. 밥퍼천사들의 전설이 시작된다.‘집에 있을 때 밥을 많이 먹지 않는 사람도 / 집을 나서기만 하면 밥을 많이 먹는 버릇이 있다 / 어쩌면 외로움이, 무사히 집으로 /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밥을 / 많이 먹게 하는지도 모르는 일 // 밥은 또 하나의 집이다. <나태주 ’밥‘>’

저작권자 © ONNews 오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