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정근 박사와 나는 한동 안 잊고 지냈던 일들을 복원하느라 부산하다.4년여 전에 철수했던 개성 병원 기억들이다. 종편 TV조선의 ‘모 란봉클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정 박 사의 출연을 요청해온 것. 나도 몇 번 곁눈질로 봤던 프로였다. 북한을 탈 출한 미녀들의 남한살이를 토크형식 으로 쉽게 풀어냄으로써 북한에 생경 하기만 한 시청자들 사이에 제법 인 기 끈단다. 다음 주 프로그램의 주제 가 ‘국경’이어서, 개성병원을 8년간 무료진료(2005년 1월~2012년 12 월)하면서 국경을(엄밀히 말하면 군 사분계선이다) 백번도 넘게 넘나들 었던 정 박사의 소감을 듣고 싶은 모 양이었다. 

녹화를 앞두고 사진 등 개성병원 자 료들을 정리하면서, 최근 위기로 치 닫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 맞물려 마 음 한 구석이 영 무거웠다. 멈춰선 개 성공단도 궁금하고, 사진 속 북한 사 람들의 근황도. 무자비한 정권 아래 서 행여 그들 삶에 변고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개성병원에 들를 때 북 측 관계자들과 종종 함께 식사했던 동봉관에서 서빙을 하던, 젊은 개성 아가씨 설화는 무탈한지. 늘 활짝 웃 으며 남측 동포들을 대하던 그녀의 미소가 새삼 그립다. 그린닥터스 개 성병원의 북측진료소 림홍배 소장, 남측진료소에서 함께 진료했던 북한
치과의사 최금철씨와 아리따운 두 간 호사들의 얼굴도 가물거린다. 간호사 중 한명은 노동당 개성시 인민위원회 고위간부의 딸이었지 아마도. 그때 북측 의사들은 남측 의사들을 무척 이나 부러워했다. 개성공단 공장 근 로자들과 월급 차이가 거의 나지 않 는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남측 의사 들의 높은 사회적 위상을 알아버렸 던 거다. 지금 다시 북측 의사들의 사 진을 보니 가운 속에서 애틋하고 안 타까움이 엿보인다. 개성병원의 남측 의사들은 가운 안에 셔츠를 받쳐 입 고 반듯한 넥타이 차림이었던 데 반 해, 북측 의사들은 런닝셔츠 위에 가 운만 걸쳤다. 그들은 더워서 그런다 고 했지만, 당연히 행색은 초라해 뵐 수밖에. 다들 잘 있을까. 방송 프로그램의 주제 때문에 처음 국경을 넘었을 때 느낌을 다시 복기 해봤다.

그때 개성병원까지 가려면 비무장지대에서 우리 군이 군사분계 선까지 안내하고, 그 다음부터 북측 군인들의 감시 아래 개성공단에 들어 갈 수 있었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 간 정 박사는 꽤나 공포감을 가졌던 듯하다. 그린닥터스 봉사활동들을 모 아 엮은 책 ‘청진기를 든 외교관’에서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모사했다. “깡 마른 북한 장교가 버스에 올라 한 사 람씩 탑승자 이름을 불렀다. 이윽고 ‘ 정근 선생!’ 하고 두 눈을 부라리며 나를 호명했을 때 온몸이 오싹해졌다.” 개성병원 개원 3주년 기념식 때 정 박사의 초청으로 처음 북한 땅을 밟 았던 나도 군사분계선을 넘던 그 순 간을 잊을 수가 없다. 훗날 개성병 원 1,000일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2007년 4월 26일) 오전 10시 40분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 반세기 이상 남과 북이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살 아오면서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장악 해온 ‘북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를 덮쳐버렸다. 심호흡 으로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공포 감에 휩싸이는 사선이 따로 없었다. 

그린닥터스 개성병원을 잠시 상기 하면서, 오늘 다시 한 번 더 다짐해본 다. 우리는 결단코 지금의 군사분계 선을 ‘공포스러운 국경’으로 후대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왜냐고, 전쟁 이 막 끝났을 즈음 시인 박봉우의 절 절한 통일염원이 여전히 막막하니까.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 항시 어두 움 속에서 꼭 한 번은 / 천둥 같은 화 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 <휴전선>’. 그린닥터스는 여전히 그린닥터스 개성행 통일엠뷸런스는 오늘도 북으로 달리고 싶다. -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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