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지난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기념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거명했고 참석자들이나 TV로 중계를 보던 국민들은 전율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친’ 5월의 젊은 영령들이었으니. 아주 특별한 이들로 대접받아 마땅했다.

​ 얼마 전 서울 출장 가려고 부산역에서 갔다가 한 중년여성으로부터 서명을 권유받았다. 5.18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라고 했던가. ‘5.18이 북한특수군 600명에 의해 저질러진 대남특수작전(게릴라 폭동)이었고, 광주시민들은 그것도 모르고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북한특수작전에 이용된 피해자들’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늘어놓았다. 어찌 국민 된 도리로서 ‘빨갱이들에게 거액의 혈세를 부담하려는’ 이런 부당한 처사를 가만히 두고 보느냐, 고 따지는 듯이 나를 몰아붙였다. 37년이나 흘렀건만 미처 두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한 5.18 영령들을 위로하려고 대통령까지 나섰건만 어찌 이 사람들은 아직도….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싸늘한 눈빛을 그녀에게 쏘아댈 뿐.

​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택시운전사’.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 아류쯤으로 여겼는데,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980년 5월의 광주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 몇몇에 의해 움직이지 않았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나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흥얼거리는 사람, 데모대 때문에 매운 최루가스를 마시게 됐다며 짜증내는 사람, 하라는 공부 안 하고 데모 하는 대학생들이 못마땅한 사람, 사글세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사람,…. 이런 보통사람들을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 바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었음을 새삼 확인해준 영화였고, 그게 ‘택시운전사’‘였다.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이고, 민주주의의 참 모습‘이라는 대통령의 5.18기념사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공황장애를 앓는 나는 보는 내내 숨 막혔고,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썩여야 했다. 미안함, 부채감이 내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내가 택시운전사 만섭이었다.

​ ‘오월 광주시민들’은 대통령의 말씀처럼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고,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거다. 영화 속 만섭의 대사. “택시운전사는 손님이 가자는 대로 가야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택시의 운전대를 잡은 ‘만섭’이다. 손님은 누구?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 나에게, 너에게, 부산역에서 서명을 권하던 그 중년여성에게, 우리에게 요구한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아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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