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이라면 한번쯤은 스마트폰 건강 관련 앱으로 하루 몇 보를 걸었는지 체크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기준이 있다. 하루에 1만 보(步) 걷기다. 그런데 이 기준이 언제 생겨난 것인지, 건강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1만보 건강론'의 시초는 일본 규슈보건대 요시히로 하타노 교수다. 요시히로 교수는 1960년대 초 일본 성인들의 비만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당시 일본 성인들이 하루 평균 3500~5000보가량 걷는데 이를 1만보까지 늘리면 평소보다 20~30%가량 칼로리를 더 소모할 수 있어 비만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당시 일본 '야마사(Yamasa)'란 제조 업체에서 걸음 수를 측정해주는 제품을 기획했다. 야마사는 이 제품에 '만보계'라는 이름을 붙인 뒤 요시히로 교수를 내세워 '하루 1만보 걷기'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만보계는 올림픽과 스포츠 붐을 타고 출시 첫해에만 100만대 넘게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BBC는 "이 '하루 만보 걷기'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마케팅의 승리"라며 "그 당시라면 몰라도 건강 지식과 운동법이 훨씬 진보한 지금도 정말 이 방법이 최선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실험을 해본 결과 만보 걷기는 효율이 너무 낮은 운동이었다. 만보를 걷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시간 52분. 열량 소비는 400~430kcal 정도였다. 정확한 운동 효과 측정을 위해 실험 기간에 하루는 시속 3.2㎞(성인 평균 보행 속도)로 러닝머신에서 1만보를 걸어봤다. 운동 강도를 측정하는 데 쓰는 심박 수는 1만보를 걸어도 분당 87회로 보통 때(분당 75회)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었다. 온종합병원 정형외과 윤태연 과장은 "운동 능력이 저하된 노년층이면 몰라도 평균적인 20~50대 성인은 하루 1만보 걸어봤자 열량 소비 외의 운동 효과는 제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1만보 운동의 가장 큰 단점은 일상에서 달성하기 상당히 어려운 목표라는 점이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일부러 계단을 사용하는 등 노력을 해도 5000~6000보 걷는 게 고작이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30~40분가량 따로 걷는 시간을 내야 1만보를 걸을 수 있었다.

 

반대로 근력 운동은 20분밖에 하지 않아도 운동 효과는 더 컸다. 운동 후 심박 수가 분당 143회로 두 배쯤 늘었다. WHO가 권장하는 중간 강도의 운동을 했을 때 나오는 수치였다. 열량 소비는 만보 걷기보다 다소 덜했다. 일상생활에서 보통 5000보가량 걷는 걸 감안하면 만보 걷기와 전체 열량 소비도 얼추 비슷했다.

 

윤태연 과장은 “신체 건강이 증진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보면 심폐 기능과 폐활량, 근육량 등이 증가한다는 것"이라며 "이 중 심폐 기능과 근육량은 일정 강도 이상의 운동으로 단련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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