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보고 휴지로 닦는데 피가 묻으면 ‘큰 병이 아닐까?’ 겁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흔한 원인이 치핵이다. 

치질로 알려졌지만 의학용어로는 이 병을 ‘치핵’이라 부른다. 치핵은 ‘피가 흐른다’는 뜻의 haimarhoos에서 비롯된 단어로, 정맥총에 피가 몰려서 생기는 일종의 정맥류이다. 
 

흔히들 “치질 있으세요?” 라고 물을 때 솔직하게 그렇다고 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병원에 잘 가지 않기 때문에 큰 질병이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경을 시행한 환자에 국한해서 통계를 냈을 때 86%가 치핵이라는 보고도 있고, 우리나라 외과 교과서에는 ’50세 이상에서는 적어도 50%에서 이 병을 갖고 있다‘고 돼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변을 보다가 선홍색 피가 발견되면 치핵일 확률이 가장 높지만, 그렇다고 다 치핵은 아니다. 

변을 볼 때 항문이 아픈 것도 항문에 갈라진 곳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항문 주위에 농양이 생긴 게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로 대장암일 때도 출혈이 있을 수 있으니, 치질이라고 혼자 진단하고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하는 대신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의할 것을 권장한다.

딱딱한 변이 옆으로 누운 채 항문관을 지나가면 아프기에 우리 몸은 혈관조직으로 된 풍부한 쿠션이 마련돼 있다. 

누운 사람의 항문을 아래쪽에서 바라본다고 가정할 때 이 쿠션은 크게 오른쪽 앞 오른쪽 뒤, 왼쪽 옆 이렇게 3개가 있고, 이 쿠션들은 평상시 항문 압력의 15~20%를 담당하고, 여기에 더해 항문관을 완벽하게 닫는 마개 구실을 한다. 

이 쿠션이 밖으로 돌출될 때, 이걸 바로 치핵이라 부른다. 

치핵에는 내치핵과 외치핵이 있는데, 내치핵은 항문관 위쪽에 있는 정맥총이 문제를 일으킨 경우이며, 외치핵은 아래쪽 정맥총이 돌출된 경우다. 

외치핵은 원칙적으로 증상이 없지만, 혈전이라도 생겨 혈관이 막히게 되면 통증이 유발된다. 내치핵의 증상으로는 출혈·체외 탈출·가려움·통증 등이 있을 수 있다.

바노프(Leon Banov Jr.)는 내치핵의 증상을 단계별로 구분했다. '피만 비칠 때'를 1기, '변을 볼 때 뭔가가 나오는 것 같은데, 저절로 들어간다'면 2기, '변을 볼 때 나왔던 그 무언가가 저절로 들어가지 않아 손으로 넣어 줘야 할 때' 가 3기, '그 무언가를 손으로 넣어도 들어가지 않을 때'를 4기라고 본다.

진단을 내리고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필수적으로 직장 수지 검사를 진행하고, 대장을 검사하고 다른 소화기계 질환 유무를 알아보기 위해 항문경, 직장경 또는 에스 결장경, 대장 내시경을 시행해 치핵을 진단한다.

보통 치핵의 기수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 1기는 약만 쓰는 방법을 주이고 1,2기의 경우에는 비수술적 치료법을 쓴다. 페놀을 오일에 섞어서 치핵 밑부분의 점막 하 조직에 주사하면 혈관이 막히면서 치핵의 크기가 줄어들게 하는 방식의 경화요법이나 고무밴드로 치핵을 묶는 고무밴드 결찰법이 그 방법이다. 

3기나 4기, 혈전이 생긴 경우, 보존적 요법이 안 들었을 때가 되어서야 수술을 권유하고 있다. 

치핵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기에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는 변을 부드럽고 쉽게 배변할 수 있도록 항문에 걸리는 압력과 긴장을 줄여주는 것이다. 

신선한 과일, 채소, 잡곡을 통해 충분한 섬유질을 섭취해 규칙적인 배변 습관과 짧은 배변 시간을 습관화하고 배변에 대한 욕구가 있을 때 참지 않는 것이 좋다.

좌욕을 통해서도 초기 치핵 증상을 호전 시킬 수 있다. 배변 후 좌욕을 통해 항문을 청결히 하고 일반 따뜻한 수돗물로 한번에 10분씩 하루에 수차례 시행하면 도움이 된다.

부끄러워 숨기는 질병, 치핵. 초기에 간단한 비수술적 방법으로도 치료가 가능하기에 이런 증상을 보인다면 전문의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고상화 온종합병원 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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