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선반이 텅 비어 있다. 어제도, 그저께도, 거의 매일 똑같은 상황이다. 선반의 존재 이유가 의심스러울 때도 많다. 승객들이 붐빌 때 손잡이로도 더 이상 쓰임은 없다. 주렁주렁 매달린 손잡이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지하철 객차기 콩나물이던 시절, 선반은 언제나 물건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학생들의 책가방에서부터 어르신들의 장바구니들까지 온갖 짐들이 빈틈없이 선반을 채우고 있었다. 웃픈 사고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선반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던 승객이 작은 물벼락(?)을 맞기도 했다. 맹물이었다면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막 재래시장에서 샀던 냉동생선들이 녹으면서 물기를 뚝뚝 떨어뜨린 거다. 지독한 비린내는 꽉 찬 승객들의 더운 숨과 어우러져 순식간에 객차 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장바구니 주인은 목적지도 아닌데도, 얼른 제 물건을 쥐고 후다닥 차에서 내리고 말았다. 비린내 나는 물을 뒤집은 쓴 승객이 곤혹스러워하는 걸 지켜보는 우리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선반이 객차만큼이나 들어찼던 날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지들이 듬성듬성 선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간신문을 읽고는 쓰레기 치우듯 훽, 선반위로 던져버린다. 심심하게 서있던 승객이 누가 버린 신문지를 선반 위에서 주섬주섬 챙겨들고는 다시 읽는다. 쓰레기 재활용하듯.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면서 그 종이신문마저 지하철 객차에서 사라지고 있다. 저마다 스마트폰 액정을 통해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접하고, 게임에 몰입한다.

 

  꽉 찬 객차에도 불구하고 손님(?) 받지 못한 선반이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현대인들을 걱정스레 내려다본다. 선반 위에 올려둘 만한 물건들을 죄다 끌어안고, 등에 진 채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다. 지나치게 디지털기기에 빠져들고 의존하다 보면 끝내 제 신세처럼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을지도 모른다고 선반은 걱정하고 있다. 오늘도 선반은 구군가의 아날로그 감동을 기다리고 있다. 날짜 지난 신문지를, 헌 소설책을, 홀로 사는 할머니의 단출한 장바구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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