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처 경기도의 중학교 수학교사로 발령받은 형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했다. 부부교사였던 형과 형수는 늘 시간에 쫓겼다. 게다가 조카가 태어나면서 더욱 그랬다. 몇 년 서울서 버티다가 결국 경기도로 이사했다. 분당 신도시에 전세 아파트를 장만했다. 당시 다들 ‘분당’을 경기도의 ‘강남’이라고 해서, 형 부부도 꿈에 부풀었고 이를 지켜보는 나까지 괜히 우쭐해졌다. 나는 그때 ‘분당’을 도시이름으로 알았고, 성남은 그 안의 작은 행정구역쯤으로 인식했다. 분당 사는 사람들도 “성남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성남신도시에 산다”고 자랑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형의 초청을 받고 분당을 방문하게 됐다. 서울 강남에서 일을 보고는 한밤중 택시를 잡아타고 분당으로 향했다. 형이 불러준 아파트 주소가 정확히 생각나지 않아 분당 아파트단지 입구에 이르자 택시에서 내렸다. 기절할 뻔했다. 그냥 아파트 몇 개동으로 이뤄진 대단위 아파트단지이겠거니 했는데, 거대한 도시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게 아닌가. 부산 촌놈은 형의 아파트를 찾을 수 없었다. 전화로 다시 정확한 주소를 확인하고, 근처 행인에게 “여기서 가까우냐?”고 물었다. “아이고 시골서 오셨어요? 잘못 내리셨네. 여기서 십리도 더 가야해요. 분당이 얼마나 큰데, 정확히 주소도 모르고 찾아와요.” 그때 나는 ‘○○마을’로만 형의 아파트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성남은 처음부터 남쪽 촌놈인 나를 심하게 우롱했다.

 

  최근 소설가 윤흥길의 중단편선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으면서 성남이라는 도시를 다시 알게 됐다. 산업화시대를 맞아 서울이 급속히 개발되면서 개발지역의 주민들은 시 외곽이나 서울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서울 철거민들이 모여 사는 데가 성남이었다는 거다. 작가 윤흥길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황홀한 집’, ‘집’, ‘엄동’ 등 중단편 소설을 통해 산업화시대에 내몰린 서울 철거민들의 성남 살이를 리얼하게 그려냈다. 허름한 벽돌에 쌓은 벽을 방풍 삼아 ‘도단’ 쪼가리들을 끌어 모아 천장을 둘렀다. 비만 오면 곳곳에 양동이를 받쳐야 할 정도로 천장은 얼기설기했다. 이 소중한 ‘마이 스위트홈’ 판잣집마저 사기꾼에게 속았고, 결국 대규모 개발에 밀려 ‘끝내 성남 사람도 될 수 없었던’ 서울 철거민들은 하염없는 서울 귀향을 꿈꾸면서 눈보라치는 거리에 나앉아야 했다.

 

  형에게 희망이자 꿈 터인 ‘분당 아파트’는 사실 1970년대 서울 철거민들의 애환과 눈물이 깊이 배여 있었던 거다. 최근 ‘대장동 개발’로 인해 다시 ‘일확천금 기회의 도시’으로 국민의 입질에 오른 도시 ‘성남’, 곰삭아서 쿰쿰한 냄새나는 그 오래된 서민의 속살쯤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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