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었다. 살아생전 그의 세도에 비춰보면 명망가들의 반응이 무덤덤할 지경이다. 시민들은 차분하다 못해 차라리 차갑게 느껴진다. 그의 말로가 비참하다.

 

  그의 등장은 살벌하게(?) 화려했다. ‘국부를 잃고 나라 전체가 비통해 있던’ 42년 전 이즈음 텔레비전에 불쑥 나타난 40대의 그는 강인해보였고, 심지어 정의로워보였다. 비록 머리숱이 듬성했지만 강골의 그를 국민들은 어느새 ‘국부의 대체자쯤’으로 우러러 봤다. 장기 집권했던 대통령의 죽음을 나라 존망의 위기로 여겼던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그가 또박또박 ‘10.26 사태’의 전모를 밝힐 때마다 안도감에 환호했고, 그 내면에 숨어 있던 폭력은 보지 못한 채 희망의 상징으로 찬사했다.

 

  대학 2학년 2학기를 마무리할 즈음 그가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내 삶도 지배당했다. 시위와 휴업이 되풀이되던 대학 8학기 동안 정식수업이라고 받아본 게 고작 절반. 학교 언저리만 배회하다가 어영부영 대학을 졸업하고는 군 복무 이후 복귀한 우리사회는 이미 그의 폭력적인 군홧발에 지성은 짓이겨져 있었다. 초짜 기자생활을 하면서 당시 비밀리에 나돌던 ‘1980년 광주에서 그가 저지른 만행들’을 담은 자료들을 접하고 몸서리쳤다. 학살, 억압, 고문, 의문사. 민주주의를 외치던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이 그의 강압에 피를 흘렸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만큼 열정적이지 못했던 나는 20대에 짊어진 부채의 무게를 지금까지 부끄럽게 감당하고 있다.

 

  그가 죽었으니 내가 짊어진 시대의 부채를 이제 내려놓아도 되는 걸까. 어떤 죽음에서 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미래를 곱씹어본다.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저작권자 © ONNews 오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