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하는 화양연화(꽃문양처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라는 말이 있다. 십 수 년 전 개봉되어 추억의 명화로 기억하는 중국영화 「화양연화」는 불꽃같은 러브스토리 한 자락 없건만 애잔한 사랑의 그림자를 가슴에 새겨 주었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되어 그래서 제목을 화양연화라 했나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집 근처 재래시장이나 동네 슈퍼를 자주 이용했었다. 시장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거기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라, 시장 골목을 한 바퀴 돌면 고단한 세상살이와 교감하고 어우러져 그냥 마음이 편해지고 넉넉해진다고. 공감을 통한 힐링인 셈이다. 세월이 흘러 여기저기 대형마트가 생기고 나서는 제삿장 보는 일 외에는 시장가는 일이 뜸해졌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대형마트에서 장보는 일이 많아졌고 저렴하게 가족나들이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한두 바퀴 돌고나면 가트에 산더미처럼 물건이 쌓이고 속으론 돈 걱정도 많이 했었다. 이젠 아이들도 우리 품을 떠나 자신의 일을 하고 부부만 사는 살림에 바깥에서 식사를 대부분 해결하니 마트에 가도 가트를 채울 수 없다. 5만 원 이상을 결제하면 5천 원짜리 상품권을 준다 해서 그걸 받으려고 한 바퀴를 더 돌아도 살 게 없다. 요즈음엔 결국 편의점에나 가끔 들른다. 편의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고생들이거나 혼자 오는 젊은이들이어서 나는 거기서도 이방인이 된다. 김애란의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가 생각난다. 밝고 세련된 매장 속에서 도시의 일상에 편입된 나를 보며 건조한 소외감을 느낀다.

 

시장, 마트, 편의점…… 어쩌면 우리 학교가 이렇게 달라져 온 게 아닐까 싶다. 다양한 사람들이 아웅다웅 부대끼며 새 힘을 얻던 곳, 대량의 상품을 구매하며 풍요와 기쁨을 함께 누리던 곳, 그리고 필요한 물건을 언제든지 빨리 살 수 있는 편리한 곳으로.

 

나는 6.25전쟁 후 모두 어려웠던 시절 초등학교에 다녔다. 집안 형편이 아주 나빠지면서 마당 깊은 부잣집 맏딸이었던 어머니는 혼수로 가져온 양단 치마저고리나 양은그릇을 전당 잡혔다. 그 돈으로 어머니는 쌀을 사지 않았다. 그 당시는 선생님들이 과외를 하던 시절이라 담임선생님에게 과외를 맡기거나 동네 착실한 고등학생에게 부탁해서 우리 형제들과 같이 공부하게 했다. 억척스런 정성 덕분에 형제들 모두 대학을 마치고 대부분이 교육가족과 인연을 맺었는데, 다 명퇴하고 이제 우리 부부만 교육계에 남았다. 학교의 변화가 우리 인생에 점점 더 많은 의문을 던져주고, 운동장은 더 이상 무한의 공간이 못 되는 탓일까? 시장, 마트, 편의점……, 삐삐, 시티폰, 휴대폰, 스마트 폰…… 빠른 속도로 속속 개발되어 나오는 첨단 제품들처럼 교실은 변해 가는데, 선생님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는 데 허덕이다 못해 멀미를 느낀다. 이유도 모른 채 시간의 흐름에 따르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잠시 기다리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여백이 없다. 마음의 여백이 많아야 건강해 지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딸들 학교 다닐 때 교복 다려 주던 시간들이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의 미래를 상상하고 기도하며 정성으로 교복을 다렸다. 그 때가 나에게는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건강시대>를 통해 소소한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 시민들의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어보고자 한다.

<강영길(내성고등학교 교장/부산시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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