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침묵

만물은 '있어라'하는 신의 명령에 의해 창조됐습니다. 이것은 코란의 말입니다. 코란은 '실로 그 분께서 무엇에 뜻을 두시고 '있어라'하면 그대로 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나는 숨겨진 보물이었으나 알려지기를 원했다.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만물이 창조된 세계에는 만물이 '어느 방향에 있든, 거기에는 알라의 얼굴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코란의 창조설은 성경에서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말한 것과 유사합니다.

코란의 명령이나 성경의 말씀이 있기 전에 만물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코란과 성경대로라면 만물은 명령이나 언어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은 명령이나 언어를 통해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인간을 가리켜 'Zoon logon echon'이라며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해석한 것에 반해, 하이데거는 '이러한 해석은 현상학적 기반을 감추고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은 말하는 존재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의 '언어'와 '이성'이라는 이중적 의미에 차별을 두어 이성 이전의 것이 언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를 가리켜 '존재의 집(das Haus des Seins)'이라고 했습니다. '언어의 주택 속에 인간은 산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언어의 감옥 속에 인간은 산다'라고 고쳐 쓰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언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은 언어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하루하루가 언어를 묶고 언어에 묶이어지면서 언어의 미로를 헤매는 것입니다. 사람이 드디어 죽는다는 것은 어느날 언어의 출구를 찾아 그 문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어의 감옥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은 침묵입니다. 침묵은 언어와 대립되어 있습니다. 언어와 대립되어 있다는 것은 신에 의해 아직 창조되지 않았고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고 인간에 의해 망가지지 않은 순수한 공간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끔 침묵한다는 것은 신이 머무는 곳에 가까워지는 것이 됩니다. 침묵은 인간과 신 사이의 경계에 놓인 완충지대입니다.

이현도 글

- 경남도민일보 2000년 3월 2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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