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 물어보라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 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시)

남해 금산은 돌산입니다. 돌산은 내가 가본적이 있는 금강산을 빼닮았습니다. 작은 금강산입니다. 산의 보리암은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 서해의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부르는 기도를 하면 큰영험이 있다는 곳입니다.  신라시대에는 이 산을 보타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보타락가를 줄인 말입니다. 보타락가는 인도에 있다는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입니다. 

보타산은 그후 원효가 보리암을 창건하면서 보광산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보광이란 여전히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의미합니다. 그 후 태조 이성계가 산이름을 금산(錦山)이라고 고쳐 지었다고 합니다. 이성계가 기도를 하고  산에다 비단을 덮으라는 신명을 받고, 덮을 비단은 없고 고민끝에 꾀를 내어 산이름을 비단으로 고쳤다는 .......

원효의 보광산이라는 이름은  <보광전>이라는 법당 편액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법당안에는 작은 관세음보살 좌상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법당 앞 삼층석탑이 있는 곳에도 입상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입상은 얼마 전에 건립된 것으로 법당안 관음상보다 스무배는 더 큽니다. 

관음입상이 서기 전에는 좌선하는 작은 보리암이 미조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세존도를 작은 실눈으로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법당과 작은 삼층석탑과 작은 불상과 작은 산령각과 작은 염불소리와 작은 까마귀떼는 영험스럽고 신비로웠습니다.

멀리 세존도는 금산 보리암에서 보일똥 말똥한 섬입니다. 이 섬에는 세존이 금산에서 돌배(石舟)를 만들어 타고 보리암 앞의 쌍홍문을 지나, 섬의 한 복판을 뚫고 나갔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섬은 아직도 큰구멍이 뻥 뚫려 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의 일입니다. 나는 남해 미조면 노구마을의 몽돌 바닷가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밤이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해안의 파도가 자갈들을 자르르 자르르 씻고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소주를 들고 옆에 앉았습니다.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다위에 까맣게 보이는 섬을 가리키며, "저 곳에서 왔다"며, 섬이름을 두미도(頭尾島)라고 말했습니다. 섬이름이 처음과 끝이라니? 내가 청년에게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자기집 주소를 나에게 주며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섬에 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지금에라도 가보고 싶은 섬이 있다면 두미도를 밟아 보고싶습니다.

처음과 끝의 섬 두미도를 끼고 있는 섬이 욕지도(欲知島)입니다. 알고싶다는 섬입니다. 욕지도와 두미도는 행정구역상 같은 면입니다. 두미도의 주소가 통영시 욕지면 두미리입니다.

1961년판의 <경상남도땅이름>에는 욕지도와 세존도와 문도(問島)를 두고 '욕지두미문세존(欲知頭尾問世尊)' 이라는 문구가 옛부터 전해 내려온다고 적혀 있습니다.  "처음과 끝을 알려고 하는가? 세존께 물어보라."

통영 앞바다의 연화도는 욕지 옆의 섬입니다.  이 섬에는 한 도인이 보살행을 하며 향기롭게  살다가 입적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수장을 하였고, 시신이 바다에 침전된 후, 그 자리에서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났다고 해서 섬이름을 연화도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바다에 핀 연꽃은 화엄경 속 풍경중의 하나입니다. 연화도의 도인전설은 바다에 핀 연꽃을 설명하려 한 것입니다. 그 도인은 필시 선재동자가 찾아나선 선지식 중의 한 사람입니다.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은 이 섬의 불교적인 전설을 헤아려 본것 같습니다. 그는 이곳에다 절을 크게 짓고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구의 섬이름에다 연화도(蓮華島)를 넣어 장엄한 서사시를 재구성 했습니다.

욕지연화장두미문세존(欲知蓮華藏 頭尾問世尊). "연화장 세계를 알려고 하는가. 처음과 끝을 세존께 물어 보라."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가 꿈꾸는 행복의 나라는 대체 어디인가?" 선재동자가 남해바다에 흩뿌려진 수많은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팔짝 팔짝 뛰어 걸으며, 바다에 새겨 쓴 서사시입니다.  해인(海印)입니다. "세존께 물어보라." 

 이현도 글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1999년 5월20일자, 경남연합일보 2006년 4월6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을 고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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