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2)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서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선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어령 장관의 부친은 6·25의 피난때에도 남의 밭을 밟지 않으려고 먼 길을 돌아왔다고 한다. 그 때문에 가족들이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며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다. 

백의민족의 가슴에는 이런 선한 피가 흐른다. 

선한 마음은 적장의 전의까지 빼앗아 버리는 힘이 있다. 임진왜란 이 일어난 1592년 봄 '사야가(沙也加)'라는 스물 두 살의 일본 장수가 조선 땅을 침략했다.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인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진격하다 피난을 떠나는 농부 가족을 보았다. 왜군들이 총을 쏘는 와중에도 농부는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아이들과 함께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젊은 장수는 자기보다 노모의 목숨을 더 중히 여기는 농부의 모습을 보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칼날처럼 번뜩이던 살기는 한 백성의 지극한 효심에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도덕을 숭상하는 나라를 어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왜장 "사야가"는 그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착한 백성들을 죽이는 전쟁은 불의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내 사야가는 부하 500여명과 함께 조선에 투항하기로 결심했다. 승전을 거듭하던 침략군이 '인의(仁義)'를 이유로 힘없는 나라에 집단 망명한 사례는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조선에 투항한 사야가와 그의 병사들은 자신의 동료인 왜군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가 바로 "김충선"이다.

백범 김구가 꿈꾼 나라는 선(善)으로 우뚝 서는 '문화의 나라'였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強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김구가 사랑한 조국이 맞는가? 적국의 장수까지 무장 해제시킨 선한 나라의 모습인가? 나라의 물질은 유사 이래 가장 부유해 졌으나 정신은 더 가난해졌다. 

그 사실이 가슴시리도록 아프다.

 출처 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였다. 작성자 배연국

 

- 네이브블로그, 일일성장(日日成長)  삶의 향기, 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 실상 (2022.06.24.)
- 네이브블로그, 우천 김덕문 블로그 자유게시판, 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 어리석은 옹달샘 (2022.06.29.)
- 네이브블로그, e-멋진 아름다운 세상, 느낌있는 글, 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였다. 봄산처럼 (2021.05.14.)
- (사진) 임진왜란때 왜장으로 출병하여 조선으로 귀화한 사가야 김충선 종2품

저작권자 © ONNews 오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