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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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왜나무

 

  마스크를 벗은 콧속으로 진한 향기가 빨려든다. 워낙 강렬했지만 결코 감미롭지는 않았다. 강한 향기 뒤에 달콤함이 은은하게 배여 있긴 하다. 급한 출근길을 잠시 길 위에서 붙들고 두개의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킁킁!, 향기를 쫓았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한 냄새의 정체가 뇌리 깊숙이 저장해둔 기억창고에서 스멀거린다. 밤꽃냄새처럼 자극적이다. 아카시아 지면 찾아오는 밤꽃 향기 아닌가. 두 눈동자가 이쪽저쪽 허공을 가로지르며 밤나무를 찾았으나 허사였다. 낙담한 시선 앞에 꽃망울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아파트 정원수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나는 키가 닿지 않아 껑충 뜀질을 해서는 기어이 가지 끝을 손으로 끌어당겼다. 콧구멍을 활짝 벌려서 가지 끝에 매달린 꽃망울에 내밀었다. 아, 밤꽃냄새의 비릿한 ‘사랑냄새’였지만 밤나무는 아니지 않은가.

  오래전부터 나는 이 아파트 정원수를 후박나무로 알아왔다. SNS에 ‘후박나무 꽃’ 사진을 올렸더니 여러 지인들이 ‘아왜나무 꽃망울’이라고 알려줬다. 인터넷으로 꼼꼼히 살펴봤더니 우리 아파트는 정원수는 후박나무가 아니라 아왜나무였다. ‘왜(倭)’스러운 이름이 마뜩찮았지만 비로소 그 정체를 알게 되니 여간 반갑지 않다. 몇 주 더 지나면 아왜나무는 활짝 꽃망울을 터뜨릴 거다. 꽃 잔치가 화려해야 올 가을 꽃보다 훨씬 아름답고 화려한 아왜나무 열매 잔치판이 벌어지겠지.

  오늘도 아왜나무 아래를 지나치면서 그 비릿한 냄새를 달콤한 알밤으로 살포시 깨문다. 이건 밤꽃 향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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