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들, 전쟁 트라우마로 대화 기피
바르샤바 인근 호스텔셀터 캠프로 몰려드는 어린 두통 환자들
‘조국 방어’ 전쟁에 참여하는 가족 생각에 우울증도 많아
폴란드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예방…한국 의료·건설 지원 요청

난민캠프 2일차 봉사활동 기념촬영 모습. (사진:그린닥터스 제공)
난민캠프 2일차 봉사활동 기념촬영 모습. (사진:그린닥터스 제공)

 ‘전쟁은 때때로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필요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악이며 선이 아니다. 우리는 남의 아이들을 죽임으로써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워서는 안 된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그린닥터스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의료지원단’이 첫 진료 봉사한 바르샤바 인근 ‘호스텔 셀터(Hostel shelter)’ 난민캠프에서 지미 카터의 말이 새삼 회자됐다.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각) 캠프에 진료실을 차리자마자 난민들이 물 밀 듯이 몰려왔다. 어르신들보다는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많았다.

진료실을 찾아온 난민들은 주로 두통을 호소했다. 어깨는 잔뜩 뭉쳐져 있었고, 불편한 임시시설에서 오래 생활한 탓인지 목이 많이 아프다며 물리치료를 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전쟁 스트레스가 심한 듯했다. 한 중년 남자는 먼 거리를 이동하는 피란 중에 다리를 다쳐 심하게 부어 있는데도 제때 치료를 못한 채 방치되고 있어 안타까웠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몹시 우울한 상태였다. 우울증 원인은 형제나 아버지 등 가족들이 여전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어 생긴 공포와 불안감 때문으로 보였다.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번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

그들은 그린닥터스 의료진에게 ‘전쟁’이 아니라, ‘방어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들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자신들이 “방어하고 있다”고 계속 강조했다.

이국땅에서 격리생활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가슴에 태극기를 단 의료지원단 단원들이 한국 사람임을 알고 매우 반겼고, 자신들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챙겨주는 그린닥터스 지원단의 진료봉사에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린닥터스재단 정근 이사장이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진료하는 모습.(사진:그린닥터스 제공)
그린닥터스재단 정근 이사장이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진료하는 모습.(사진:그린닥터스 제공)

정근 이사장이 맡고 있는 안과 진료실에 열두 살 남자아이 티모테가 찾아왔다. 티모테는 2018년과 2022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두 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내사시가 심했다. 티모테 역시 별로 말이 없었고 우울한 상태였으나, 치료를 받는 중간 중간 정근 이사장에게 미소를 띠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엄마와 함께 낯선 땅 바르샤바로 피란 온 그는 낮에 엄마가 일터로 나가는 동안 캠프 안에서 다른 어르신들을 돌볼 만큼 심성이 고왔다. 전쟁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세일즈매니저였던 티모테의 엄마는 전쟁이 끝나도 지인들이 많은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친지들이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로 갈 계획이다. 그만큼 러시아에 대한 공포가 커보였다.

티모테의 엄마처럼 전후 조국으로의 귀환을 꺼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20대 여성 카테리나(26)는 부모가 이혼한 탓에 남동생과 단둘이서 피란길에 올랐다. 그녀는 격전지로 알려진 돈바스 지역을 거쳐 피란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똑똑히 목격했단다.

카테리나도 “지금도 전쟁이 너무 무서워서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여전히 전쟁을 매우 두려워했다. 열악한 난민캠프 생활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다운 모습은 어쩔 수 없었다. ‘한국과 2030 부산 월드엑스포’를 알고 있느냐‘는 그린닥터스 단원의 질문에 카테리나는 “BTS(방탄소년단) 팬”이라고 하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BTS 덕분에 한국과 부산을 잘 알고 있었지만, ’월드엑스포 부산 2030‘은 그린닥터스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며 관심을 가졌다.

동병상련이 가장 실천적으로 행해지는 곳이라면 전쟁 난민캠프를 빼놀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 티모테나 카테리나도 그들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신체적 고통이 심하지만, 틈만 나면 서로를 도왔다.

군목인 바냐씨(48)도 마찬가지다. 군인신분이어서인지 그는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의 기원이 2014년부터 비롯됐다 했다. 8년 전부터 지속돼온, 친러 세력들이 지배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에서의 내분을 전쟁의 시작으로 보는 듯했다. 군인이기 이전에 목회자인 그는 지금은 전쟁난민을 돕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그린닥터스가 방문한 호스텔 셀터의 난민 40여명뿐만 아니라, 바르샤바 인근 도시에 설치돼 있는 캠프 120명까지 돌보면서 당장 난민들에게 필요한 식자재,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단다.

그린닥터스는 첫날 호스텔 셀터에서 바냐를 비롯해 카테리나, 티모테 등의 도움을 받아 진료 봉사와 더불어 비상 구급의약품들이 들어 있는 응급키트와 과자류 등을 난민들에게 나눠주고 격려했다.

한편 그린닥터스재단의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단’ 일행은 진료봉사를 마친 13일 저녁(현지시각)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우크라이나 대사 등을 접견하고 ‘한국-우크라이나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주 폴란드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은 “우리는 도움이 절실하고, 특히 건설과 의료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제사회에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

현지 관계자와의 협약식 장면. (사진:그린닥터스 제공)
현지 관계자와의 협약식 장면. (사진:그린닥터스 제공)

대사관 측은 “원래 국가 간 교류 지원문제는 정부 조직에서 담당해야 하지만, 지금은 전시상황이라 주재국 대사관에서 외교적 루트로 지원 방안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린닥터스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그린닥터스는 “전쟁 종식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면서 “앞으로도 우크라이나 의료기관 등을 통해 의료분야 교류·지원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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