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나흘째 바르샤바 한인교회서 교민 진료·의약품 전달
주폴란드 ‘우크라’ 대사관서 울려 퍼진 애국민요에 눈시울

우크라이나 의료현장 모습.(사진:그린닥터스 제공)
우크라이나 의료현장 모습.(사진:그린닥터스 제공)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 매일처럼 주저 않고 싶을 때 / 나를 밀어주시네 /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 …

5월 15일 오전 폴란드 소재 한인교회에서는 찬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봉사 나흘째를 맞이한 그린닥터스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단’은 한인교회에서 교민들을 상대로 진료활동에 앞서 찬양부터 드렸다. 하루빨리 우크라이나가 빨리 회복해서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닥터스 대원들은 교인들과 하나 된 마음으로 찬양가 ‘일어나 걸어라’를 노래했다.

찬양하는 내내 이번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단 단원 가운데 유독 5명은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올라옴을 느꼈다. 정근 이사장(안과), 김동헌 의료단장(외과), 오무영 온종합병원 센터장(소아청소년과), 임세영 원장(소아청소년과), 김정용 보건소장(열대의학) 등이 그들이다. 이들 다섯은 그린닥터스 재단이 2005년 1월부터 2012년 12월말까지 꼬박 8년 동안 북한 땅 개성공단에서 ‘개성 남북협력병원’을 운영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고, 누구보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난을 겪는 북한의 실상을 똑똑히 봐왔던 분들이다. 임세영 원장과 김정용 소장은 개성병원 병원장으로 일하면서, 출입 등 활동이 극히 제한적인 북한 개성공단에서 북한 사람들과 서로 부대끼면서 남북한 근로자들의 건강을 돌봤다.

 

우크라이나 의료봉사 진료 현장.(사진: 그린닥터스 제공)
우크라이나 의료봉사 진료 현장.(사진: 그린닥터스 제공)

김동헌 단장은 개성병원 개원 초기 부산대병원으로 근무하면서 의료진 수급에 크게 이바지했다. 억압된 체제인 북한에서 진료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대학병원의 젊은 의사들을 설득해서 개성병원으로 보냈다. 오무영 센터장도 부산백병원 교수로 재직 중 수십 차례 개성병원에서 진료봉사를 했고, 지금도 그린닥터스 국제진료센터를 통해 북한 이탈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정근 이사장은 8년간 개성병원 살림살이를 도맡아 해결했다. 남북한 각각 진료소에서 모두 30여 명의 의료진 급여와 병원 운영비를 책임졌다. 그는 매 월말이면 운영비와 인건비로 쓰일 달러를 들고 개성공단을 출입했다. 갈 때마다 안과진료도 빼놓지 않았다.

이들 ‘개성병원 5인방’은 개성공단을 ‘작은 통일’로 여기며 자신들의 작은 진료 봉사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으나, 끝내 정치적 상황에 내몰려 공단이 폐쇄되자 얼마나 울분을 터뜨렸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폴란드 등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개성병원 5인방은 한국전쟁 후 북한의 삶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터라 곧바로 의기투합해 폴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은 폴란드 국경지역의 난민캠프를 찾아가 난민들을 진료하고 의약품을 전달하는 등 의료지원 활동을 벌이면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틈만 나면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봉사 이틀째인 5월 13일 저녁 그린닥터스는 폴란드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초청받았다. 거기서 그린닥터스와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은 전후 우크라이나에서 의료 및 건설 분야에 대한 복구사업에 그린닥터스 등 대한민국 기업·기관·단체 등이 협력하는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장내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우크라이나 유력 국회의원의 부인인 카타리나여사가 우크라이나의 애국민요인 ‘Oj u luzi czerwona kalyna(오, 칼라인의 벚나무 풀밭에서)’를 불렀다. ‘오, 들판에 가막살나무 꽃이 붉게 피었다네 / 우크라이나의 영광도 저 꽃처럼 피어난다네 / 저 붉은 가막살나무 꽃을 높이 들고 나아가자 / 우리의 영광스러운 우크라이나에, 길이길이 살고 또 살리라 // 우리 자원입대자들은 이제 죽음의 전쟁터로 간다네 / 적들의 손아귀로부터 우크라이나를 구하기 위해 나아가자 / 우리는 이제 우크라이나 형제들을 해방시키리라 / ​우리의 영광스러운 우크라이나에, 길이길이 살고 또 살리라 // …’.

통역을 통해 가사 내용을 전해들은 그린닥터스 단원은 감동에 북받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은 “이 노래를 듣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슬픔이 깊이 공감되면서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린닥터스 의료지원단 일행은 “대한민국도 일제침략과 6.25전쟁의 아픔을 겪은 나라로서,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해 더욱 깊은 연민을 느낀다”며 남은 의료지원 기간 동안 더욱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하는 자리가 됐다.

이에 답가로 북한 개성병원 병원장을 오래 지낸 김정용 소장이 즉석에서 ‘You raise me up’를 답가로 부르면서, 전쟁으로 삶터를 잃고 지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로했다. 그날 우크라이나 애국민요와 그린닥터스의 답가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평화의 소중함을 깊이 깨달았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그린닥터스 개성병원 5인방은 이번 우크라이나 난민 진료봉사 내내 10년 동안 보지 못한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떠올리며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곱씹어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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