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헨조다로(Mohenjo daro)

'모헨조다로'라는 이름은 '사자(死者)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인더스 문명을 지금의 북부 인도인의 조상인 인도아리아인이 정복 이때 멸망한 문명의 중심지가 바로 모헨조다로 였기 때문에 현재 주민들도 꺼린다고 한다.

파키스탄 남부, 수도 카라치의 북북동쪽 300km에 있는 인더스 문명 최대의 도시 유적지이며, 하라파와 함께 이 문명의 쌍(雙)수도로 여겨진다. 

1921년 발견된 이래, 처음에는 마샬, 이어 마키(EJH Mackay), 후에는 위러에 의해서 대규모로 발굴되었다.

유적은 주위 5km 이상에 걸처 있었고 발굴 결과 서쪽에 성새, 동쪽에 시가지구가 있어서 질서있는 도시 계획에 의해 설계되고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성새는 동서 200m, 남북 380m, 높이 15m의 인공 언덕으로, 소성연와(燒成煉瓦)와 일건(日乾) 연와(흙벽돌)로 구축된 성벽에는 여기 저기 감시대가 있다. 

내부에는 공공용의 대목욕장, 곡물창고, 하양대(荷場台),  학문소, 집회소, 방비소 등의 시설이 있으며 중심부에는 쿠샨 시대의 스투파가 서 있으나 조사가 덜된 상태이다.

시가지는 도로에 의해 정확히 구획되어 큰 도로(大路)가 남북으로 셋, 동서로 두 길 직교로 나 있고, 그것에 의해 나누어진 대 블록이 작은 도로(小路)로 세분되고, 그 소로에 면해 주택이 늘어 서 있다.

건축은 일정한 규격의 일건연와와 소성연와로 지어져 있다. 배수설비도 완비되어, 주택에서 토관(土管)을 통해 하수구로 흐른 물은 맨홀로 모아져, 소로를 따라 하수도로 부터 대로의 주배수로로 흘러 나온다. 

각호(各戶)의 벽에는 쓰레기 투하 장치(dust chute)가 설치되고 수세식 변소도 있다. 일반 주택 외에 여관, 상점, 공장(工匠)들의 집들도 있다. 

모헨조다로의 유적은 지하 수십미터까지 퇴적해 있어서그 도시가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케 하는데, 현재는 지하수가 상승해서 심부(深部)까지는 발굴되지 않고 있다.

이 유적의 출토품에는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미술품으로서  주목되는 것은 석회암으로 된 남자의 흉상으로, 삼엽문(三葉文)의 옷을 입은 사제왕(司祭王)의 상이라 말해지는 것과 남자의 좌상 등이 공통된 체격을 나타내고 있다. 

눈이 움푹패인 것은 조개껍질이나 돌을 끼웠던 것 같다. 또 청동 무용수상, 테라코타 상, 각종 동물이나 문양을 새긴 다수의 인장(印章), 채문토기 등이 있다. 

출토품은 현지의 박물관 외에, 카라치 국립박물관과 뉴델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모헨조다로 유적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 지식백과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모헨조 다로 Mohenjo daro 한국사전연구사
- 나무위키 모헨조다로 파키스탄 3.JPG 최근 수정시각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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