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布施)

티벳사람들의 천장(天葬)의식은 생각만 해도 섬뜩합니다. 사람의 시신이 산 정상의 천장터에 옮겨지고 예리한 칼을 든 천장사가 시신의 살을 떠내거나 군데군데 칼질을 합니다. 독수리가 먹기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천장사는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 떼에게 시신을 밀어놓고 물러서서 망자의 가족과 함께 지켜봅니다. 독수리들은 순식간에 시신에 달려들어 먹이를 깨끗이 먹어 치우고  뼈만 남깁니다. 육신에 의미를 두지 않는 티벳 사람들은 이러한 장례의식이야 말로 망자가 세상에 베푸는 마지막 보시(布施)라고 생각합니다.  

보시는 더불어 사는 이들에게 베푸는 행위입니다. 베푸는 행위야말로 세상을 정화시키는 에너지입니다. 불교에서는 대승보살의 첫 번째 실천덕목을 베푸는 행위에 두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의 죄악이 탐욕에서 기인하기에 베푸는 행위는 탐욕의 무서운 병을 다스리는 묘약이 되고 자비심의 발현이라고 믿습니다. 나은 사람이 모자라는 사람에게 베풀고 잘난 이가 못난 이에게 베풀어 줍니다. 

독일인 수사 노르베르트 베버가 쓴 <수도사와 금강산>(1927)에는 산짐승들에게 보시하는 장안사 스님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오무렵, 한 스님이 산짐승을 위해 댓돌 한쪽 귀퉁이에 음식을 놓아두자 새들이 날아들고 있었습니다. 스님들이 걸식해서 얻은 음식을 먹고 남겨서 짐승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에 살면 사람들보다 짐승을 더 많이 만납니다. 자연히 짐승들의 안부가 더 궁금합니다. 우리집 주변에 고양이 두마리가 자주 욌다 갔다 하기에 고양이 사료를 사서 마당 한켠의 댓돌 위에 두었더니, 아예 얘들이 정착을 했습니다. 지금은 고양이가 대여섯마리가 되었고,  족제비와 너구리, 까마귀, 파랑새까지 교대로 드나들며 사료를 금방 먹어 치웁니다. 담비와 삵도 우리집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산에 살면서 자급자족하고 돈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짐승들을 위한 밥벌이는 해야 합니다. 젊은시절 사람에게 못했던 보시를 늙어가면서 산짐승들에게 실천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티벳사람들처럼 시신이 되어 산꼭대기 반야봉이나 천왕봉의, 내가 점찍어 놓았던 바위위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날짐승들을 기다리는 꿈을 꾸어 봅니다.

'내 세상 뜨면 풍장을 시켜 다오 / 섭섭하지 않게 /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 손목에 달아 놓고 / .... (중략).... //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 살을 말리게 해 다오 / 어금니에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 바람 이불처럼 덮고 / 화장(化粧)도 해탈도 없이 /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황동규 시 <풍장> 일부)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2000년 1월13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을 고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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