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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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녹색 둘레길

 

  모처럼 가족 셋이 산행에 나섰다. 산행이래야 금정산 산기슭을 좇아가는 둘레길 2㎞ 남짓이다. 6월의 문턱에 들어서기 전인데도 기온은 어느새 한여름의 턱밑까지 치솟았다. 정수리를 내리쬐는 한낮의 따가운 햇살 탓에 산행을 망설이는 발걸음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기슭에 들어섰을 뿐인데도 우거진 숲으로 햇살을 몰아 우격다짐으로 달려드는 자외선마저 공세를 멈췄다.

  짙푸른 녹음 터널 속으로, 이따금 건물에 빗물 새듯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었다. 오랜 가뭄 탓인 듯 길은 푸석거렸으나, 짙은 녹음에 갇힌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촉촉하게 했다. 오랜만에 녹색 기운이 듬뿍 배인 피톤치드로 흠뻑 샤워했다. 등짝과 겨드랑이에는 땀인지, 피톤치드로 샤워한 뒤끝인지 축축해졌다. 새들의 합창이 쉼 없이 이어졌다. 박자와 리듬의 부조화가 어찌도 그리 하모니를 이루는지. 녹음의 벽으로 둘러쳐진 숲 극장은 지저귐의 공명으로 이어지고 울려퍼졌다. 지금까지 간간히 들어온 거장들의 교향곡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내 몸은 감동에 겨워 흐느적거렸다. 녹음 벽에 찰싹 붙어 있던 햇살도 어느덧 새들의 합창에 스르르 눈을 감고 감동에 젖어들었다. 뜨거운 열기를 가라앉힌 채.

  더할 나위 없는 한낮 녹색 산행이었다. 함께 금정산 둘레길에 들어선 가족 셋은 모처럼 녹색에 녹아들었다. 마치 제 가족의 색깔이라도 된다는 듯이. 5월의 녹색 물결에 갇히는 바람에 몇 번씩이나 길을 놓쳐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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