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방고전(字倣古篆)

한글 28자를 세종임금께서 친히 만드셨지만 '문자는 옛 전자를 본받았다 (字倣古篆)'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보고 그동안 억측이 분분했습니다.

이 고전(古篆)을 파스파 문자, 범자, 서장 문자, 일본 신대 문자, 팔리 문자 혹은 중국의 전서체라는 주장이 있었는가 하면, 태극 사상에 기인한다거나 창호 상형에서 기원한다는 설들이 있었습니다.

1880년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간행된  (파울만 지음)라는 책에는 훈민정음이 파스파 문자를 모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40년에 발견된 에서 '초성 글자의 기본 자는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고, 중성 글자의 기본 자는 천. 지․인 삼재(三才)를 본떠 만들었다'라는 말을 찾아내고는 한동안 세종의 친제설이 득세했습니다.

또다시 1984년에는 안호상씨와 송호수씨가 고려 학자 이암(1297~1364)의 를 전거로 들어 이른바 기원전 2181년에 만든 38자의 가림토 문자가 고전(古篆)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니, 

1997년에 조철수씨는 훈민정음은 중국 유태인이 쓰던 히브리 문자의 영향을 받아 고려 시대에 만들어져 이암의 책에 가림토 문자라는 이름으로 옮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자방고전'에 대한 관념론적이고 구구한 해석들은 닮은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리 스스로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갖고 있다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근거에 접근하지 못한 데에 기인합니다. 

따지고 보면 닮은 것이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훈민정음의 니은(ㄴ)이 로마자의 엘(L)을 닮았고, 이응(ㅇ)은 로마자의 오(o)를, 우(ㅜ)는 티(T)를 닮았습니다.

이익이 자신의 책 에서 '세종께서 한글을 처음 만드실 제 명나라의 학사 황찬이 귀양살이를 하는지라, 성삼문 등을 보내 질문하게 하였는데 13번이나 왕래했다.'라며,

'황찬이 우리에게 전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몽고 글자에 대한 지식일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집현전 학사가 당대의 성운학의 석학이었던 황찬에게 질문하여 얻은 것은 문자 창제에 대한 음운론적 지식이지 문자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 경남도민일보,  은퇴 부부의 남지리산일과 (42)  이현도 (1999.10.07.)
- 네이브블로그, 南智異山日課, 리뷰로그, 자방고전(字倣古篆), 이현도 (2022.08.23.)
- 네이브블로그, 시간의 파도, 환단고기, 훈민정음 창제; 자방고전, 잉어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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