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옛날 사람들은 막연히 상상해 왔습니다. 인류 역사상 언제인가 신이 내려준 원래의 언어가 있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들은 모두 이 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신으로부터 받은 언어는 신의 언어이므로 신과 통화를 할 때는 신의 언어나 이에 가까운 고어(古語)를 써야만 한다고 믿었습니다. 힌두교는 의식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썼고, 천주교도 미사를 집전할 때엔 근래까지 라틴어를 썼습니다. 오래된 언어일수록 신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불교인이 즐겨 독송하는 천수경이나 반야심경 혹은 능엄경에 나타나는 다라니가 번역되지 않고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동일한 인도의 언어로 읽혀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다라니는 부처님과 소통이 가능한 진언(眞言), 즉 참언어로 여기고 있습니다.

중세유럽의 초기 언어학자들 중에는 성경이야기의 바벨탑에 대한 믿음에서 언어의 출발점을 찾으려고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탑을 무너뜨린 것이 오늘날처럼 언어가 분산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자연히 언어기원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1786년 윌리암 존스가 인도에 살면서 발표한 논문은 유럽인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가 유럽의 라틴어, 그리스어 그리고 켈트어와 친족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영어와 인도언어의 뿌리가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이 논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의 직업은 언어학자가 아니라 변호사였기에 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에야 존스의 논문은 언어학자에 의해서 사실로 입증이 되었습니다.

그 후 100여년 동안 독일의 언어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연구해 온 역사비교언어학의 성과는 위대하고 방대한데, 그 중 하나는 인구어족(印歐語族) 언어의 친족관계를 규명한 것입니다. 인구어족은 인도 남부의 스리랑카 섬에서부터 중동의 대부분 언어들, 그리고 중국의 히타이트어와  북방의 슬라브어들, 또 유럽의 이슬란트 섬에까지 이르는 게르만어, 로만어들을 포함하고 있는 대어족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오래 살기도 했던 에크하르트 같은 언어학자는 한국어까지 인구어에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1957년 촘스키에 의해 언어학의 새로운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촘스키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뿌리가 되는 틀을 신으로부터ㅂ 물려받았다고 생각한 언어학자입니다.

촘스키는 또 만약에 화성인이 있다면, 그들은 지구인들이 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결론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갖가지 새들의 울음 소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소리를 그저 울음소리 정도로 인식하는 것처럼, 우리자신은 언어들을 복잡하고 난해하게 생각할 지라도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이들은 우리의 언어를 인간이 구애하는 소리나 갈구하는 소리 쯤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스페인어를 잘 모르지만, 선천적 언어인  몸짓언어로 스페인사람과  어느정도의 의사표현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몸짓언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세계공통의 언어입니다.

1998년 소설가 복거일씨에 의해서 영어 공용어화 문제가 제기돼 한동안 상당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영어는 이미 세계의 언어가 되어 있습니다. 영어의  세계정복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바벨탑이 무너질 날도 다시 오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글쓴이_이현도>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1999년 6월17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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