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터의 역사

내 마당에 남새밭이 생긴 사연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을 헤아릴 수 있는 능럭이 떨어져서, 그 때의 일이 10년 전의 일인지 15년전의 일인지, 아니면 그 보다 전의 일인지를 정말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남겨두어야할 이야기거리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해이든가 비가 억수로 많이 왔던 해입니다. 섬진강 물이 범람하였고, 화개장터에 물이 잠기었을 때입니다. 계곡물이 엄청  불어나서 바위가 굴러 떠내려가는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 광경을 보지 않은 이는 상상조차 못합니다.

계곡물에 집채만한 바위가 쿵쿵거리며 뛰어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나는 걱정스럽게 바위가 굴러가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는데, 실로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드는 일이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물동이로 쏟아붓듯이 내리고, 대낮에 갑자기 집 서편 동산이  꿈틀거리더니 산이 통째로 걸어 왔습니다. 내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산이 내려온다. 산이 내려와."  그랬더니 산이 걸어가다가 거짓말처럼 뚝 멈추어 섰습니다. 동산이 30미터 정도 걸어와서 내 집앞을 스쳐 지나갈 참이었는데, 내 고함소리에 놀라 멈추어 섰던 것입니다. 산은 아름드리 큰 자귀나무 한 그루와 참나무 한그루가 꼿꼿하게 세워진 채로 였습니다. 산이 제발로 걸어 내려왔기 때문에 원래부터 내 마당에 산이 그대로 서 있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의 집터는 오두막 하나 겨우 끼일 정도로 좁았는데 집마당의 남새밭은 그 때 그 산이 내려와 생긴 것입니다. 남새밭의 나리꽃과 붓꽃과 금낭화와 취나물과 참나물 무리들도 산과 함께 이주해 온 것들입니다.

또 옹달샘이 하나 생겼고 옹달샘에는 제법 물이 많이 솟아나, 옹달샘의 물은 남새밭 뒤로 도랑이 되어 돌돌돌 흘러가고 있습니다.  

산사태를 겪으면서 산이 나에게 재난을 주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두고 보니, 재난인 것처럼 포장을 한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큰 상수리나무와 아름드리 자귀꽃나무와 야생화를 가득 담은 동산이 그 선물입니다. 이 만큼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선물이 있을까요? 산신령이 산을 사랑하는 나에게 준 선물입니다. 

그후 떠내려온 동산을 남새밭으로 일구고 살면서, 몇가지 유물들을 발견했는데, 그 중에는 탄알 하나,  숯무덤 그리고 공룡알입니다. 공룡알을 나는 한번도 전문가에게 감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만, 30센티 길이의 타원형 돌은 영락없는 공룡알입니다. 

유물들을 시대순으로 추측해서 나열하자면 공룡알이 먼저입니다. 이 땅에도 수많은 공룡들이 판을치는 쥬라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숯무덤이 더 오래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산 아랫마을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석탄광맥처럼  뻗어있는 숯무덤은 이 터에 숯만드는 가마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 골짜기가 첨첨밀밀한  정글이지만,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쯤에는 동네가 번성해서 사람들이 숯을 구어서 산넘어 화개장터에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지리산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 지금은 곰과 멧돼지만 살고 있는 장터목이 실제 사람들이 득실거렸던 장터였던 시대의 일입니다.

90살이나 100살쯤 되는 노인이라면 그 시대를 어느 정도 상상해 볼 수 있겠지만, 그 어느 세대도 추측이 불가한 깜깜해진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또 내가 발견한 탄알 하나는 6.25 전쟁 당시 이 산 속에서 교전이 일어났던 빨치산의 것이거나 국군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6.25 전쟁  중에는 지리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낮에는 국군에게 끌려가서 두들게 맞거나 죽고, 밤에는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두들게 맞거나 죽었습니다. 이쪽 저쪽에 잡혀가서 개죽음을 당한 불쌍한 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봄이면 금낭화가 만개하고 여름이면 나리꽃 피고, 취나물과 참나물이 자라고, 샘물이 돌돌돌 흐르는 내마당의 동산을 남들은 예사롭게 보겠지만, 이 곳에는 나만이 알고 있는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또 여기서 나온 유물들이 속삭이는 땅의 이야기를 나는 들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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