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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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식

 

  고향 노루밭을 부산 집에 이식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송송한 달맞이꽃이며, 채송화와 백일홍에 항암효과가 뛰어나다는 와송까지. 고향의 그리움과 추억들이 아스라이 시들어가는 게 아쉬워서다. 오롯이 ‘고향’으로 자리 잡았던 아버지어머니가 떠난 자리는 무엇으로도 메워지기 어려웠다.

  일상에 쫓겨 까마득히 잊고 있던 아버지 기일을 이틀 앞두고 서둘러 아버지어머니를 모셔놓은 고향에 들렀다. 산소로 향하는 7월 고향의 들과 산은 여전히 내 유년의 추억을 피워내고 있었다. 뙤약볕에 추레해진 노란 호박꽃. 덩굴 속에는 아이 머리통만한 호박이 푸르고 커다란 잎사귀로 뙤약볕을 가린 채 어수에 빠져들었다. 녹색으로 무성하게 우거진 덩굴 사이에 촘촘히 작고 노란 얼굴들을 내밀고 있는 오이꽃.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귀촌한 형의 집 뜰에서도 보기 드문 보랏빛 열매와 꽃이 모처럼 시골 나이들에 나선 나를 반겼다. 무더위에 지친 가족을 위해 어머니는 들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밭에서 따온 가지로 냉국을 만들었다. 여름이면 어머니는 만들기 손쉽지만 무덤덤한 맛과 식감 탓에 어린 내 입맛을 끌지 못했던 오이냉국을 대신해 별식으로 가지냉국을 내놓았던 거다. 한 방울 떨어뜨린 참기름의 고소함과, 막 길어 올린 우물물에 식초를 곁들인 가지냉국은 엄마 표 별미요리였다.

  고향집에서 옮겨 심은 달맞이꽃과 백일홍, 채송화가 아파트 거실의 낯선 환경에 설레고 있을까, 노루밭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오래전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던 나는 내내 설렘보다는 그리움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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