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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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축

 

  친구 어머니 병실로 들어서는데 색다른 물건이 눈동자를 확 채웠다. 우선 반가웠다. 그리운 얼굴이 순간 내 머릿속을 꽉 메웠다. 전축이었다. 아담한 크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구성졌다.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검은 레코드판 위로 가늘고 날카로운 바늘이 서로 다른 골을 따라서 돌아간다. 젊은 ‘이미자’의 노래는 이미 훌쩍 늙어버린 내 가슴을 애잔하게 후벼 팠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 잊혀버린 전축은 말끔했고, 새것으로 보였다. 요즘도? 아직까지 전축이? 돌아가는 레코드판은 젊은 ‘이미자’를 밀어내고 다른 가수를 데리고 나와 옛날이 그리운 어머니의 가슴을 적신다.

  중학교 때 처음 전축을 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터로 나선 고향친구가 전파상에 취업했다더니 집에 ‘유성기’나 ‘축음기’라 불리던 전축을 들여놨다. 동요 아닌, 대중가요는 집집마다 마루 기둥에 부착된 스피커 라디오로 들어왔다. 맘에 든다고 자꾸 들을 수 없는 게 불편했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 희망곡을 신청했으나 감감무소식. 근데 친구의 전축은 하루 종일 같은 노래를 듣고, 또 들을 수 있었다. 눈물 젖은 두만강, 용두산 엘레지, 나그네 설움, …. 친구와 나는 구들장 장판지가 녹아들만큼 뜨끈한 방 아랫목에서 수없이 바늘에 긁힌 레코드가 지직거릴 때까지 되풀이해서 노래를 들었다. 그 친구는 지금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있지 않다. 어머니의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이미자의 구성진 노래가 그날따라 너무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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