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반칙 (2)

남편은 삶의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TV를 많이 본다. 특히 음식 프로를 본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시장에 간다. 식재료와 양념을 빠짐없이 잘 사온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대량으로 사오는 것이 문제다. 작은 용량의 것은 사지 않는다. 식초도 대병으로 사고 참기름도 대통으로 사왔다. 

남편의 눈에는 적은 용량의 것은 양에 차지 않는다. 모든 것이 커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잘 했다고 칭찬한다. 일을 거들어 주지도 않으면서 타박만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알 때까지 기다린다. 

남편은 전화 걸기를 좋아한다. 고향의 어릴 적 친구부터 외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 까지 안부 전화를 한다. 남편이 관리하고 있는 친지는 약 100명 정도 인 것 같다. 그런 관계로 밖에 나가서 남편과  통화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무엇이고 사는 것을 무척 좋아 한다. 과일과 과자 등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좋아 하는 것들을 많이 산다. “당신 좋아 하는 거야.“  아주 비싼 태국산 애풀망고를 들고 들어온다. 

그러나 먹기는 남편이 먹는다. 그리고 다시 사온다. 살 때는 아내가 좋아 할 것을 생각하고 사지만 먹을 때에는 잠시 아내를 잊고 만다. 

그러나 언제나 아내 것을 사 온다. 오늘도 포도를 사왔다고 했다. 근데 보이지 않는다. “여보 포도 사왔다며 어디있어요.?” “응 그것 내가 먹었어 또 사다줄께…” 한다. 

그러던 남편이 없으니 주전부리가 떨어졌다. 그동안 남편 덕에 잘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게 되려는지….?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맛있고 비싼 것을 사온다. 나도 남편을 위해서 뭔가를 사야 한다. 

그래야 냉장고가 채워진다. 그러나 남편이 없다. 먹어 줄 사람이 없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냉장고가 채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일은 딸이 온다고 하니 조금 준비를 해야겠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가면서 마스크 착용을 안했다.  급히 뛰어 들어오며  “여보  마스크~” 하고 남편에게 마스크를 집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 남편은 없다. 아직도 남편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한다.    

‘여보 나 심심해.’ 오래 같이 살던 부부에게는 하루라도 먼저 떠나는 사람이 승자다. 남편은 결승선까지 와서 갑자기 스케이트의 날을 피니쉬 라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숏트랙 빙상 선수처럼 운명의 결승선을 넘어 들어갔다. 남편은 나를 밀치고 자기의 오른편 다리를 쭉 뻗어 넣은 것이다. 그는 운명의 선을 통과했고 나는 낙오됐다. 그래서 돌싱이 됐다. 남편의 반칙이다.

나는 오늘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미술 공부는 일주일에 한 번 지도를 받는다. 선생님은 어떤 그림을 배우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초상화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남편의 초상화를 그려 보려고 한다. 

그리는 동안 마주 앉아서 못다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서다. 아버지와 남편에게는 할 말이 많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시집살이 하면서 효도 못한 것을 사과드리고 싶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왜 거짓 말을 했냐고 따져 보려고 한다.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나는 믿었었다. 나를 먼저 보내고 뒷정리하고 곧 뒤따라 갈테니 멀리가지 말라던 그 말, 그 변명을 꼭 듣고 싶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의도적으로 외출을 하려 한다. 외출복을 차려 입고 격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며칠 안으로  벗나무에 꽃송이가 벌어지는 것도 보겠고….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가 그리고 싶은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을 때 까지 분발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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