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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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죽집의 비빔밥

 

  끼니때를 놓쳤고, 더 이상 허기를 참아내기 어려웠다. 즐겨보는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고로처럼 길 위에 서서 식당을 둘러봤다. 마땅한 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죽집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었다.

  허기를 죽으로 때우려니 맘에 걸렸으나, 어쩌랴. 영양죽으로 주문하려고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쳐다보다 놀랐다. 전복죽, 소고기죽, 야채죽, 석이버섯죽 등 스무 가지가 넘는 죽 메뉴 옆에서 보란 듯 비빔밥 식단표가 빼곡히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종류만 해도 열 가지 넘었다. 죽집에 비빔밥이라니. 생선초밥에 라면처럼 어색하기도, 열무김치에 된장찌개처럼 환상궁합이 기대되기도 했다.

  각종 육류나 해물이 들어간 것들은 배제했다. 지금까지 내 뇌리에 각인돼 있는 죽집 이미지 탓에 선뜻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가장 단순한, 나물비빔밥으로 선택했다. 하얀 쌀밥 위에 콩나물, 버섯, 해조류, 당근, 우엉 등 온갖 나물들이 곁들여져 있었다. 죽집에서 직접 만든 특제 고추장 소스 하나를 뜯어 넣고 버무렸다. 쓱, 쓱, 싹, 싹! 고추장이 밥알과 나물들을 곱게 연지곤지 화장해가는 사이 허기를 자극하는 향긋한 양념냄새가 새 신부 지분내처럼 와 닿는다. 꼬르륵! 숟가락이 넘치게 한 술 떠서는 쩍, 하고 허기가 똬리를 틀고 있는 포도청으로 우겨 넣었다.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 맞닿을 새도 없이 혀끝에서 서너 번 구르더니 스르르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식감도, 맛도 주 메뉴인 죽에 손색없었다.

  유명 죽 전문점의 비빔밥 메뉴도 성공적이었다. 허기의 위력인지, 손맛의 힘인지 따져보는 걸 무의미하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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