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서울

삼국유사 기이 제2편 김부대왕조에 '개신라위경주(改新羅爲慶州) 이위공식읍(以爲公之食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고 국서를 바치자, 고려 태조는 신라를 고쳐 경주라 하여 이를 공(경순왕)의 식읍으로 삼았다는 기록입니다. 또 고려사절요 권3에는 '성종육년십일월(成宗 六年 十一月) 개경주위동경유수(改慶州爲東京留守)'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두 문헌대로라면 신라(新羅)가 고려 태조 때 경주(慶州)로 개명되었다가, 또 성종 6년(987년)에 이르러 경주는 동경으로 개명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경은 고려 태조가 도읍한 개성의 동쪽인 동서울의 뜻으로 읽혀집니다.  

고려사람들은 개성을 개경(開京)이라 했고, 개경을 중심으로 평양을 서경(西京), 한양을 남경(南京), 경주를 동경(東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경은 고려때부터 생긴 이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라 때의 금석문이라든지, 가악 이름에도 동경이라는 지명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신라향가 처용가의 처음은 "동경 밝은 달밤에 .... (東京明期月良 ....)"로 시작합니다. 양주동 박사는 동경을 '서벌'이라고 해독했습니다. 서벌은 오늘날 서울로 음변천을 했습니다.

서울은 신라와 고려시대 때에는 경주를 가리켰고, 조선시대 이후에는 한양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석가모니가 금강경을 설한 곳은 북인도의 사위국(舍衛國)이라는 나라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스라바스티 (Sravasti), 중국말로 음독(音讀)해서 실라벌(室羅筏)이라 쓰기도 합니다. 벌(筏)은 국(國)과 동의어입니다. 실라벌을 신라사람들은 서라벌(徐羅筏) 혹은 줄여서 서벌(徐筏)이라고 읽었습니다.  

신라의 왕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왕의  이름을 한동안 불교이름으로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선덕여왕의 가족은 왕의 호칭 뿐만 아니라 속명도 불교식이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그의 아버지 진평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야(摩耶)입니다. 이러한 신라왕은 땅이름과 나라이름도 불교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수있습니다.

신라때 최치원이 쓴 <신라국 가야산 해인사 결계장기>에는 신라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국호 시라자 바라제 흥법지처야 (國號 尸羅者 實波羅提 興法之處也)' "나라이름을 시라라고 한 것은 바라제로서 법을 일으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의 육바라밀 중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의 지계는 산스크리트어로 실라(Sila)이고, 한자어 음독으로는 시라(尸羅)로 씁니다. 신라라는 나라이름이 최치원은 시라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라국은 지계국(持戒國), 즉 지계 바라밀로써 나라를 일으키는 곳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북인도에는 금강경의 사위국(舍衛國)왕 파사익이 젊은 시절 유학하기도 했던 곳으로 시라국(尸羅國)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현도 글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1999년 8월 5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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