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정상탑

육조단경은 초조 달마이후 선종의 6대조였던 혜능(慧能․638~712)의 일대기입니다. 이 책은 글조차 읽을 줄 몰랐던 혜능이 육조가 되기까지의 노정과 제자에게 행한 갖가지 설법을 담았습니다. 육조단경에는 혜능의 선사상과 번뜩이는 기지가 간결한 문체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육조단경 이후 혜능의 선풍(禪風)은 남송(南宋)말까지 무려 6백년을 풍미합니다. 육조의 선맥을 이은 당(唐)대의 임제(?~867)는 제자들로 하여금 형식과 타성의 굴레 혹은 사상적 권위나 고정관념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오로지 선(禪)체험을 통해 인간해방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친 선승입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고승들이 혜능에 이은 임제의 선맥을 계승했습니다. 특히 고려 때 지눌은 혜능이 주석했던 조계산의 이름을 따서 자신이 머무는 전라남도 승주 송광사의 산 이름조차  조계산으로 바꾸고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도 주로 금강경과 더불어 육조단경이었습니다.

육조단경은 부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조사를 탑에 모신 지 10년후, 밤중에 별안간 탑 속에서 쇠줄을 끄는 듯 한 소리가 나므로 대중이 놀라 나가보니, 상주차림을 한 사람이 탑에서 나와 달아났다. 곧 탑 속을 살펴보니 조사의 목에 상처가 있었다. 5일만에 석각촌에서 도적을 잡았다. 소주로 보내어 이를 심문하니 도둑은 신라승 김대비에게서 돈 2만량을 받고 육조대사의 머리를 취하고자 했다. 김대비는 조사의 머리를 모시고 해동에 돌아가 봉안하려 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승 김대비의 육조정상 해동 봉안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하동군 삼신산 쌍계사의 창건연대는 723년으로 개산조는 김대비입니다. 고사에 의하면 삼법스님과 공모하여 육조의 정상을 절취한 대비스님은 해동으로 돌아와 사방이 눈 덮인 산을 헤매다가 유달리 눈이 녹고 칡꽃이 만발한 땅을 보고 그 곳에 육조 정상을 봉안하게 됐다고 합니다.

쌍계사 경내 응봉기슭의 금당에 육조 정상탑이 있는데 방광(放光)이 자주 나기로 유명합니다. 금당에 걸린 현판글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과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은 추사 김정희가 쓴 것입니다. 금석학자였던 추사가 왕유의 <육조혜능선사> 비문에 나온 문구를 옮겨 적은 것입니다.

"세계(世界)는 한송이 꽃(一花)으로 피었고, 조종(祖宗)은 여섯 이파리(六葉)로 돋아났다."

세계일화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합니다. 조종이란 조사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여섯 이파리란 여섯 조사로, 초조 달마, 이조혜가, 삼조승찬, 사조도신, 오조홍인, 육조혜능을 말합니다. 

 

이현도 글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2000년 2월24일자에 게재했고,  월간반야 2003년 1월 (제26호)에 이일광이라는 필명으로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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