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제(漢武帝)

한무제(劉徹 BC156~BC87)는 역사적으로 공과 과가 큰 인물이다. 국가주의 자에겐 불세출의 영웅이며, 인도주의 자에겐 진시황에 버금가는 폭군이었다. 

그러나 그가 치세 중에 얻은 뜻밖의 성과는 중국의 역사를 크게 진전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게 된다.

강성한 흉노세력에 대한 토벌을 본격화 할 당시, 한무제는 흉노와 원수지간이라고 알려진 월지(月支)국과 제휴해 흉노를 협공하고자, 어디에 있는 지도 정확히 모르는 월지국으로 장건을 사신으로 파견한다. 

이 무모할 정도로 적극인 계책은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서역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함께 실크로드 개척이라는 의외의 엄청난 결과를 얻게 된다.

알다시피 실크로드는 막대한 고정적 교역 수익을 안겨 주는 교역로인 동시에, 정보와 첨단 기술이 오가는 문명의 교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더 주목 할만한 것은 물산이 풍부하고 다양한 중국으로 하여금 영구적으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쥘 수 있는 구조적인 혜택을 안겼다는 점이다. 

즉, 흉노가 장악했던 북쪽의 '초원의 길'을 통하던 교역 물량을 빼앗아 한나라가 개척한 실크로드로 통합해 동서 무역이익을 독점케 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실크로드 개척 이후, 흉노와 그리고 그들과 연합하고 있던 고조선은 북방 초원의 길의 교역 물량을 한나라에게 뺏김에 따라, 무역수익이 급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실크로드가 열린 시점 이후, 강성했던 고조선의 국력이 서서히 기울고 흉노와의 결속도 떨어져 내부 분열의 끝에 결국 멸망하게 된 것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다. 

고대나 현대 전쟁은 모두 '돈의 전쟁'이다.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북방 '초원의 길'을 깔고 앉아 오랫동안 전성기를 누렸던 흉노와 고조선은 이 시점부터 결정적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교역의 이익이 감소한 흉노의 일부는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쪽으로 아예 서진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트루크 터어키

이에 따라 중국은 '문경지치'로 다져진 경제 기반과 무제의 영토 확장에 이은 '실크로드'의 장악으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동아시아의 패자가 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치세를 ‘한무성세(漢武盛世)로’도 부르지만 잦은 원정과 대 토목공사와 도교(道敎) 술사의 꾀임에 빠져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국고를 모두 탕진한 재위 후반기엔 백성은 도탄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 

마침내 먹을 게 없어 이웃끼리 자식을 서로 바꿔 잡아먹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일어났던 것이다. 말년에 이를 후회한 한무제는 무리한 대외전쟁을 자제하고 피폐된 민생을 재건하고자 애썼지만, 이미 황폐해진 한나라는 그의 사후 내리막길을 달린 끝에 결국 AD8년 왕망에 의하여 망하고 만다.

 

- 네이브 BAND, forum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 역사 Why와 What의 역사, 36.인간의 노래, 인위지치人爲之治, Jason Ryoo 레오 (2022.07.29.)
- (그림) 한무제의 화려한 행장, 할아버지 문제(文帝) 가 단색의 검은 옷을 소박하게 입던 행장과는 뚜렸이 비교 되는 모습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피를 나눈 두 사람이 본 세계는 이처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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