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칠석 견우직녀(牽牛織女) 설화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두 별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그 위치가 매우 가까워지는데, 이 사실에서 설화가 생겨났다. 

이 설화의 발생 시기는 불확실하나, 중국 후한(後漢) 때 조성된 효당산(孝堂山)의 석실 속 화상석(晝像石)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전한(前漢)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곧 춘추전국시대에 천문 관측을 통해 은하수가 발견되었으며, '시경(詩經)의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설화의 연원으로 추정되는 시구가 있다. 

후한(25~220년) 말경에는 견우와 직녀 두 별이 인격화하면서 설화로 꾸며졌고, 육조(六朝, 265~589년) 시대에 이르러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견우를 만난다.'라는 전설로 발전하였다.

이 설화의 가장 오랜 것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는 평안남도 강서 덕흥리 고구려고분벽화(408년)에 은하수 사이에 견우와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의 그림이 발견된다 (사진).

직녀는 하느님[天帝]의 손녀로 길쌈을 잘하고 부지런했다. 하느님이 매우 사랑하여 은하수 건너편의 하고(河鼓)라는 목동(견우)과 혼인하게 했다. 

그러나 직녀와 견우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매우 게을러졌고, 하느님은 크게 노하여 둘을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다시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리고 한 해에 한 번 칠월칠석에만 같이 지내도록 했다. 은하수 때문에 칠월칠석에도 서로 만나지 못하자, 보다 못한 지상의 까막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이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그 다리를 '까막까치가 놓은 다리', 즉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칠석이 지나면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져 돌아온다고 한다. 

또한 이 날 오는 비는 '칠석우(七夕雨) '라 하여 그들이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며, 그 이튿날 아침에 오는 비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전한다.

이 설화는 혼인한 부부가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맡은 바 직분을 수행해야 함을 말해 준다. 또한 남녀가 신의 벌을 받고 재회를 위하여 1년간 인고의 기다림을 겪는 것은, 하나의 통과의례 절차로 간주할 만하다. 

그리고 남과 여가 항상 만남과 헤어짐, 다시 만남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곧 천체 우주 질서에 해당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특이한 점은 중국 설화에는 앞부분에 '나무꾼과 선녀'가 결합하면서 '지상에 남은 우랑(牛郞, 곧 견우)이 말하는 소[牛]의 지시로 하늘로 올라간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 설화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 <한국설화유형 분류집> 에 이 설화에 해당하는 유형 항목이 존재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된 자료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우랑직녀(牛郞織女)는 4대 전설로 여길 정도로 널리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채록본은 심의린이 '조선동화대집'에 수록한 '오작교'이며, 그 외에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채록된 자료가 없다. 

다만 최근에 신원기가 박사논문 부록에 개인 채록본 3편을 게재하고 있다.

칠석관련 속담으로 '까마귀도 칠월 칠석은 안 잊어버린다' '칠석날 까치 대가리 같다' 가 있다. 전자는 중요한 사실이나 날짜는 명심해서 잊지 말 것을 일깨울 때 쓰고, 

후자는 칠석에 까마귀와 까치가 머리를 맞대어 오작교를 놓아서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할 때 머리털이 다 빠졌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로, 머리털이 빠져 성긴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 견우직녀설화의 문학교육적 가치 연구,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신원기 2009년
- 견우직녀 취회설화의 문학적 전개, 국어국문학 p49~50, 국어국문학회, 김석하 1970년
- 조선동화대집, 심의린 저, 신원기 역, 보고사 2009
- 지식백과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 편, 두산백과, 견우직녀(牽牛織女) 집필 이지영, 제공처 국립민속박물관 
- 네이브블로그, 중국어 한국어 놀이터, 칠월칠석(7월7석) 이야기: 유래, 음식, 풍속, 친절한 주선생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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