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위암은 전체 암 중에서 발생빈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흔한 암이다. 발생 부위에 따라 수술 난이도와 예후가 달라지며, 위의 상부에 생긴 암일수록 수술이 어렵고 예후 또한 좋지 않다. 특히 식도와 위의 연결 부위 근처에 생긴 분문부(噴門部) 위암의 치료가 가장 까다롭다. 분문부 위암은 최근 식생활의 서구화로 증가하는 추세다. 발생 요인은 다양하나 환자 빈도수가 높은 서구에서는 비만과 더불어 잦은 위 식도 역류를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암 치료의 기본은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절제 수술, 항암제 투여, 방사선 치료, 면역요법, 유전자 치료 등 다양한 수단이 사용된다.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은 수술로 제거가 불가능하므로 항암제를 사용하는 게 원칙이고, 위암 대장암 간암 등과 같은 고형암은 수술로도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30여 년 전의 일이다. 외래로 찾아온 60대 후반의 위암환자 P(남) 씨가 위와 식도의 연결 부위 2㎝ 아래에 생긴 분문부 위암으로 진단됐다. 다행히 다른 장기에 전이되지 않고, 위 점막 하층에만 국한된 조기 위암이었다. 암세포 부위에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식도를 절단하고 위를 전부 제거하는 게 치료 포인트다. P 씨처럼 조기 위암인 경우 위의 상부만 제거하고 아래쪽 위와 식도를 연결해주는 위 부분 절제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절제술과 함께 암세포의 전이 가능성이 있는 위 주변의 임파절까지 충분히 제거해야 완벽한 수술이라고 외과학회에서는 규정한다.

필자는 이런 학회 원칙에 따라 P 씨의 위암 상연(위쪽 암과 정상조직의 경계)의 위와 식도를 상연에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절단하면서도, 암의 아래쪽엔 4~6㎝ 안전거리를 두고 절제 후 위와 식도를 바로 연결하는 부분 절제수술을 선택했다. P 씨는 잘 회복돼 퇴원했으나 합병증으로 나타난 위 식도 역류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다. 수술 후 10여 년이 지날 즈음 P 씨는 주치의에게 ‘이젠 죽고 싶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위 식도 역류가 악화돼 괴로워했다. 주치의로서도 참으로 괴롭고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위암이라는 병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수술 후 십 수년을 살고 있기 때문에 치료에는 완전한 성공이지만 환자가 받는 고통과 삶의 질을 고려하면 절반의 성공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필자는 위 상부 부분절제술을 포기하고 위 전절제술로 바꾸었다. 하지만 위 전절제술 후에는 위 식도 역류는 거의 사라졌으나, 환자는 비타민 B12의 결핍과 영양장애 등 합병증으로 평생 이에 대한 관리가 필요했다. 의사로서 늘 환자를 위한 최선의 길을 고민하던 필자는 이 두 가지 수술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또 다른 수술법의 개발을 간절히 기원했다. 필요가 발전을 가져왔는지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필자는 위 상부를 절제하고 남은 식도와 소장을 먼저 연결하고, 식도와 소장의 연결부위에서 10~15㎝ 밑에다 남아있는 위를 소장에 가져다 붙이는, 소위 ‘이중통로 근위부 위절제술’을 시행했다. 수술 후 경과를 오랫동안 관찰해보니 P 씨에게 일어났던 위 식도 역류도 거의 없고, 위 전절제술의 후유증으로 나타났던 비타민 보충이나 영양장애도 거의 없어 조기 분문부 위암 환자의 치료에 이 수술법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중통로 근위부 위절제술을 시행한 지 5년 만에 이 같은 수술 결과를 정리해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최된 국제위암학회에 발표했고, 이듬해 대한외과학회지에도 게재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외과 의사들이 좀 더 발전된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을 통해 위암 환자의 회복 속도도 빠르고, 수술의 침습 정도를 최소화했다.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난치성 질환도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의 깊은 고뇌와 노력을 통해 극복되고 발전되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2019년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에다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는 ‘30-50 클럽’에 세계 일곱 번째로 가입했고, 이런 경제 수준과 걸맞게 의료 수준도 세계에서 5, 6위로 평가된다. 오랜 코로나 팬데믹에다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 경제침체로 인해 지금 우리나라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오랜 세월 우리 의료진의 열정으로 이뤄낸 ‘K-메디’가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위기 돌파구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김동헌 온종합병원장·부산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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