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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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시골 고향으로 귀촌한 형과 오랜만에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눴다.

“어제 오늘 서리가 와서 냉해가 좀 왔다.”

“아이고, 서리가 벌써.”

“그러게 날씨가 정말 예측불허다. 계속 덥다가도 갑자기 하얀 서리가 완전 뒤덮네.”

“고구마 밭 다 말라 비틀어졌겠네요.”

“고구마는 벌써 캤지. 지금은 콩 종류와 단감. 단감 농사하는 사람들이 걱정 많지.”

“서리 맞으면 물러터지겠네요, …”

하얀 서리로 뒤덮인 들판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막 타작 끝낸 벼논이 이른 아침 동녘 하늘에서 솟구친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논두렁을 타고 가는 콩잎들이 누렇게 시들어간다. 그 곁에서 철 지난 노란 호박꽃이 서릿발 서슬에 놀라 채 피기도 전에 스스로 꽃잎을 오므린다. 미처 수확하지 못한 콩밭엔 콩대만 껑충하다. 지난밤 서리에 이파리들을 죄다 떨군 채 앙상한 줄기는 콩꼬투리들을 주렁주렁 허리가 휘어져라 무겁게 매달고 있다. 뒷마당의 빨간 감들도 서리에 벼려진 햇살 받아 눈부시게 반들거린다. 울긋불긋 이파리 진 자리에 동글동글 얼굴을 내민 감들이 주렁주렁 입안에 단내를 불러낸다. 마당을 독차지한 멍석 위에서는 빨간 고추들이 보란 듯이 오수에 빠져들었고, 장독대 아래 고운 국화꽃 송이 송이마다 산기슭의 단풍 색을 절정으로 몰아간다.

상강(霜降)을 지나면서 고향의 가을이 깊어가는 모양이다. 서리 맞은 듯 머리카락 하얀 초로의 삶도 덩달아서 탱탱하게 익어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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